신자 아주머니 한분이 돼지국밥집을 차렸다면서 한번 다녀가라고 하셨다. 김밥도 오뎅도 소주도 있노라고 했었다. 벌써 수년전 촌 성당에 있을 때 일이다.
그날 오후 서너 시쯤 나는 딸딸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길 갔었다. 국밥 한 그릇과 더불어 또 특별대접으로 소주 대신 맥주한잔을 놓고 나는 이쪽 구석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막 숟갈을 들참에 웬 여자 한 분이 저쪽에서 이쪽 가까이로 슬슬 다가오더니 대뜸 『천주교는 술도 처 묵고 담배도 피워대고/나무로 만든 예수나 마리아께 절 한다면서요/또 제사도 지내면서 조상에게 밥도 멕인다면서요』라고 일갈대성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아차, 깜박 잊고 이런 때 로만칼라를 하고 나오다니…. 그렇지만 이른바 가정 사목 방문엔 칼라쯤 안하고 올 수도 없었지 않나?!)
그 처럼 살기등등한-질문도 아닌-「말로써 사람 잡는」도전적·전투적 공세에 나는 무어라 대답하기가 싫었다. 그것도 지금 맛있는 돼지국밥을 먹고 있는 중이 아닌가. 이런 경우엔 묵묵부담, 그저 국밥이나 열심히 퍼 먹는게 좋지 않겠는가. 그게 또한 쉽지 않았다. 내 옆에 바짝 붙어 선 그 여자는 계속 쉬임없이 욕설을 발설하는데 죽을 지경이었다. 온몸에 불이 확확 붙을 판이었다. 나는 그러나 참느라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번갈아 들었다 놓았다 했었을 뿐이다.
그랬더니 얼마 후 그 여자가 목청을 대포 소리로, 목젖이 찢어질 정도의 쇠톱 소리로써 『천주교 신자는 다 마귀 새끼요 지옥에나 갈 끼다』는 「말 같잖은 말」을 내질렀다. 그 말씀이(또는 개소리) 언듯 내 귀에 쏙 박혀 들어올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슬쩍 쳐다봤더니 그 표정이나 손발 짓이 과연 일전불사 하겠다는 용사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무식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도 많은데 이 마당에 한판 구경꺼리를 제공해서 창피를 줄 속셈이 틀림없었다. 참 머리가 잘 도는-돌아가는, 돌아가 있는-여자였다.
어쨌든 마귀 새끼 중에 중간 형님뻘이 될 만한 천주교 신부 하날 죽일 심산인 지도 몰랐다. 나는 죽어서 어딜 갈까? 『아무데라도 좋으니 이런 여자가 없는 곳에 가게 해 주소서』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날 나는 돼지국밥을 3분의1쯤밖에 못 먹고 일어났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문 쪽을 향해 걸어 나왔다. 그래도 문손잡이를 잡기 전에 되돌아섰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그 여자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타일러주기라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이다.『아주머님께 오늘 저는 무조건 졌습니다. /항복하고 갑니다 혹 아주머니가 다니는 예배당 목사님이 강습소 출신의 사이비 목사가 아닌지, 집에 가서 좀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거짓목사의 속임수 섞인 말을 곧이듣거나 뭔가 아는 체 믿고, 또 남의 종교나 신앙을 함부로 취급하는 아주머닌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속아사는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 아주머니 말고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아주머닌 대표적으로 불쌍하고 불행한 분입니다』
그런 뒤 몇몇 일 후 우연한 기회에 그곳 목사님을 만났었다. 그와 나는 신학 얘기, 교회 얘기를 한참 진지하게 했었다.
그리고 끝엔 청소년교육 문제도 서로 고개를 끄덕여가며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그 불쌍한 여자 얘기는 하지 않고 다만 그 여자의 도전적 질문에-얘기를 하던 가운데 그 어디쯤에선가 기회를 잡아-나름대로 성실히 들려주었다. 천주교의 근본입장과 삶의 지침을 쉬운 말로써 해설해준 것이다.
우리들은 그 날 이후 친구가 되었다. 그 목사님은 그곳 예배당에 부임한지 몇 달 밖에 안 되는 점도 나와 꼭 같다고 했다.(그러면 그 여자는 그 이전 다른 목사의 제자였던가!) 우리는 나이도 비슷했고 서로 수차례 만나 그 공장지대의 청소년 노동자를 위한 기숙사를 함께 지을 계획까지 하곤 했다.
아이구! 그런 청소년사업을 같이 추진하기로 거의 결정을 본 한 달 후, 그 목사님은 그곳 예배당 장로회로 부터 쫓겨나고 말았다. 아아, 얼마나 애통했던가. 그 목사님이 떠나기 전날 들려준 사연 진실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신부님, 저도 어릴 때 우리 마을에 개신교 예배당대신 천주교 성당이 있었다면…저도 신부님이 됐을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만, 다른데 가면 그래도 또 열심히 기도하고 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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