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외국 손님을 모시고 경주의 고적을 더듬은 일이 있다. 늘 가진 염려이지만 또 지나친 노파심에서『큰 경비를 들여 마련한 곳이니 깨끗이 보존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텐데―』하는 조바심으로 초조해진다. 우리들만의 관광이 아니니까 체면이 앞서는 모양이다. 그런데 먼저 천마총 정문에 들어서니 마음이 놓이는 것이 둘레의 담, 닦여진 길이며 나무들 넓은 잔디밭 걸상 초롱 모양의 전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정성이 스며 있는 듯. 천마총 내부의 구조와 묻혔던 수많은 보물, 어깨가 으쓱해진다. 경주 일대에 보존되어 있는 신라 문화의 유산으로 우리 조상의 슬기와 솜씨를 자랑하는 데만 그친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후예로서의 긍지와 이에 맞는 현실도 곁들여야 될 테니. 박물관 불국사 석굴암까지 올라갔다. 손님은 천오백 년 전의 우리 문화에 계속『훌륭했군요 걸작입니다』하며 탄성을 연발하는데 나의 속셈은 딴 곳에 있다.
옛 것보다 눈 앞의 것이 문제인 듯. 정리되고 다듬어지고 가꾸어져 신품 조작품이란 인상이 별로 안 나고 이만하면 누구에게 보여도 괜찮겠다는 안도감. 매끈히 포장된 차도 고비마다의 거울 절벽, 언덕은 쌓아올린 돌, 나무, 잔디 어느 하나가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어떻게 하면 더 어울리고 아름다울꼬?』하면서 모든 정성과 기술을 다 쏟은 자국이 뚜럿이 보인다.『참으로 수고했구나, 고마워라, 몇 해만 더 가면 초목이 우거져 짜임새가 더 나아지겠구나』속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감사와 찬미의 노래도 흥얼거렸다. 더욱 기뻤던 일은 혼자서 다 좋아하듯 발걸음도 가볍게 여러 곳을 돌아보아도 휴지 한 조각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곳곳에 예쁜 휴지통이 마련되어 있어 그런지 우리의 생활이 이만큼 정리되었는지 워낙 깨끗한 곳은 더럽힐 수 없었는지 하여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생각은 자꾸 날개를 편다.
공항역의 대기실 고속버스 안 여기저기의 화장실 등…
좋은 시설을 해놓은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을 잘 쓰고 오래 보존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일 게다.공중도덕은 문화의 척도」라고 하는데 이점 우리도 이젠 뒤져서는 안 되겠다. 공원에 도로변에 광장에 어디에나 휴지통이 놓여진 덕분에 날아다니는 휴지가 줄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욕심을 부린다면 차창으로 침을 뱉는 일 담배꽁초나 껌 사탕을 싼 종이를 던져 버리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특히 열차에서 껍질이나 종이로써 더럽히는 일이 없어야겠다. 이웃 나라에선 유치원 아이들이 놀고 간 자리에도 종이 조각 하나 흘리지 않더라는 이야기 모두 가방이나 포켓 속에 집어넣어 간다고. 이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에겐 부러운 일, 역시 어린 시절부터의 교육과 큰 사람들의 좋은 생활 습관이 합쳐져야 하는가 보다.
요즘은 집집마다 쓰레기통이 방마다 휴지통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때마다 각자가 집어 넣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실컷 어질러 놓고「쓸면 된다」는 어긋난 편리주의는 사라졌으며 휴지통 애용의「휴지통 교육」이란 이름을 붙여도 보고픈 마음이 든다. 1세기가 10년으로 10년이 1년의 속도로 변화가 빠른 시대이지만 휴지통 교육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 아이「휴지통 교육」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꽃 필 적에 우리의 골목도 유원지도 산과 들도 보다 아름다운 곳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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