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ㆍ대학ㆍ고교ㆍ초청 야구 등 큼직한 백구(白球)의 향연이 봄부터 연달아 펼쳐지고 있다. 야구 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유난히 촌티 나는 팀이 있다. 선수들의 차림새가 아니라 경기 운영에서 촌티가 나는 것이다. 이런 팀의 선수들은 공을 하나 던질 때나 치려 할 때마다 감독의 지시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기민한 운동신경으로 상황 판단을 재빨리하여 볼을 처리해야 할 순간에도 감독의 눈치부터 살핀다. ▲자율성이 이처럼 결여돼 있다는 사실은 감독이 선수들의 역량을 아예 무시하고 불신하는 증거이다. 감독의 지시만 따르게 돼 있는 선수들에겐 창조적인 판단력이나 작전을 스스로 개발할 소지가 없다. 이런 팀은 바람직한 전력(戰力) 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에 원칙적인 패배의 요인을 안고 있다. 천우신조(天佑神助) 하는 경기 운이 없는 한 질 수밖에 없다. 이런 팀의 경기를 지켜보노라면 어딘가 모르게 한심한 생각이 들고 울화까지 치민다. ▲2주일 전 서울 제3한강교에서 어느 아가씨가 투신 자살을 기도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한강에 빠진 아가씨는 약 30분간 허위적거리며 떠내려갔다. 그러나 다리 위에 모인 시민 2백여 명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미군 병사 2명이 뛰어내려가 구출했다는 기사였다. 구경만 한 시민들은『남의 일엔 오뉴월에도 손이 시렸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자율성 없는 야구팀의 선수들처럼 감독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런 일화가 있다. 어떤 학생이 나폴레옹에게『장군님의 그 무서운 용기는 어디서 나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중학 시절에 나는 야구투수로 이름을 떨쳤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가 투수로 활약하던 팀은 자율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자율성이 없으면 용기를 부릴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미군 병사처럼「박애를 실천하는 데는 가장 큰 용가가 필요하다」반면에 구경만 한 시민에겐 용기뿐 아니라 인륜(人倫)까지 이미 상실한 듯하다. ▲교회는 형제애의 표지요 상징이며 모델이다. 공의회 문헌에는 분명히 그렇게 정의돼 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이 정의를 정면으로 거스리는 일도 가끔 있다. 형제가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부모와 남은 형제들은 잘못이 있건 없건 변호사를 부르고 돌보아 주는 것이 본분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그렇지 않고 이를 수수방관만 하거나 오히려 헐뜯는 듯한 언동은 인륜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런 처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자율성이 너무 많은 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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