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적잖은 가톨릭대학생들이 봉사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봉사활동의 대상 지역으로 전기나 의료시설 등이 없는 낙후된 촌락, 그 중에도 대부분 공소가 있는 곳을 택하고 있다. 가톨릭대학생이기에 이들이 봉사활동을 벌이는 취지는 당연히 그리스도교적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남에게 봉사하는 정신을 기르는 데 있다. 이 같은 봉사활동은 시골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상호간의 인간적 우애와 공동체 의식도 높여줄 것이며 나아가 도시와 시골간의 공간적 단절에서 오는 격차와 부조리도 최소한 이나마 줄이는 효과도 거두리라 믿는다.
대학생 봉사단이 계획하고 있는 봉사활동의 내용은 농사일 협조와 변소 및 부엌 개량 공소 보수 등 노력봉사에서부터 의료 보건위생 성경학교 여성교양강좌 아우강 수예 조화 등 가내부업 지도 운동기구 보급 평신도사도직협의체 구성을 위한 협조 등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러한 활동 내용 선별은 선배들이 수 년에 걸쳐 경험해온 바가 토대가 되었겠지만 현지 답사 등을 통한 갖가지 사전준비의 착실한 흔적이 뚜렸하다. 특히 봉사단원들이 현지로 떠나기에 앞서 며칠간 봉사활동의 방법과 내용에 대한 강습교육을 받게 하는 태도는 높이 살 만하다.
이러한 가톨릭대학생들의 갸륵한 목적과 활동을 볼 때 크리스찬으로서 우리가 지닌 봉사의 의무와 자세를 새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봉사」「증거」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 우선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자신이「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음」을 분명히 밝힌 후 그대로 실천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모든 크리스찬은 누구나 자기 봉헌의 사랑과 자기 희생의 사랑으로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봉사함으로써 증거하고 증거함으로써 봉사하는 것은 모든 크리스찬의 사도직이요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크리스찬 사도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신 그리스도처럼 스스로 낮추는 자세로 수행되지 못하면 아무런 성과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곳은 주민들의 교육 수준이 낮고 각종 문화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해온 촌락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곳 주민들이 대학생을 무조건 선망하리라고 속단하거나 주민들이 학생들의 뜻대로 고분고분 호응해 주리라고 무턱대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베론성지를 순례 갔던 서울의 신자단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곤경을 겪은 경험은 훌륭한 교훈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순례단은 버스를 타고 지나갈 뿐이었지만 현지의 농민들은 버스 통행을 방해하는 등 이유 없는 감정 노출(?)이랄까 텃세를 톡톡히 부렸던 것이다. 대학생들은 물론 사전답사를 통해 주민 대표나 공소 회장과 미리 접촉했을 것이고 관계기관의 협조를 받아 봉사활동을 벌이기 때문에 스스로 이미 높여버린 우월감을 표출시키는 일이 없는 한 그런 불상사는 없으리라 믿는다.
가톨릭대학생은 누구보다『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누구든지 높은 사람, 즉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기억할 것이다. 크리스찬 대학생들이 누구나 알고 있을 이 말씀을 새삼스레 상기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학생은 이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으로서 더욱 위대한 지도자의 길을 닦는 도상에 이 말씀을 계속 음미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국민의 머슴으로 봉사하는 십자가를 진다면서 반대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세계 도처에 허다하고 봉사하러 나선 지도자가 봉사 받을 일념에만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봉사활동에 나선 가톨릭대학생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시골 주민을 섬기는 심부름꾼으로서 주민과 함께 살고 공감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 봉사를 받는 곳의 주민과 봉사하는 우리 가톨릭대학생이 함께 형제애를 꽃 피우는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봉사활동에 곁들이게 될 소양과 수련시간도 지도자의 길을 닦는 데 크게 도움되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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