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다 우리집 밥 한 끼 잡수시면 배탈 난답니까? 어디서라도 식사는 하셔야 되는데』하면서 잡아끄는 아주머니의 기세는 당당. 몇 차례 사양하다가 이젠 어쩔 수 없다는 듯 불안을 띤 표정으로 따라간다. 간곡한 권유의 거절은 애덕의 위배인가? 실례인가? 하고서 정성껏 차린 식탁은 평소의 모자랐던 영양 보충이 넉넉히 될 듯. 그러나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아 그런지 소화액의 분비가 잘 안 되어서인지 몇 조각 먹은 고기가 급기야 체증이 되어 그 후 며칠이나 고생을 했다 해도 이 사정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하듯 수녀는 자기들끼리 조촐하게 식사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인가보다. 공의회 이후에 여러 가지 달라진 것이 있는데 이 회식도 큰 변화 중의 한 가지인 듯.
학교 유치원의 입학식, 졸업식뿐 아니라 본당의 반상회 신심회 연도모임 등 그때마다 먹고 마시는 게 따르게 된다. 먹는 것이 마음을 열게 하고 연결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며 모임의 목적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한계를 넘을까 헛걱정으로 해본다. 어떤 기관의 단체행사 때뿐만 아니고 개인의 생일잔치, 회갑연 결혼 축하연까지 번지고, 다과에서 식사로, 콜라에서 맥주로, 우동집에서 횟집으로…하는 식의 발전(?)이라면…
『아무 수녀도 가던데 어떻습니까. 그런 구식은 버립시다』하며 신부님이 초청되는 곳엔 으레 수녀도 끼어야 한다는 고마운 마음씨엔 머리 숙이지만 몇 사람의 호의가 결국 길어지면 문란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모든 법과 규칙은 그 한계선까지 오는 것보다 더 안쪽에서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세상이 급속히 변화했다지만 30년 이내에 무척 바뀌었다. 28년 전 어느 지방 학교에 있을 때 둘이서 70리를 걸어 단 한 집 남았던 학급생의 가정방문을 했는데 도착한 때가 오후 3시 다리도 아프고 배는 등에 닿은 듯 기진한 몸을 끌고 겨우 태연을 조작하여 들어가니 흰 고깔에 발목까지덮은 검은 제복, 게다가 묵주를 늘어뜨린 우리 모습을 처음 보는 터이라 동네 사람이 큰 구경거리인 듯 모여들어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물 한 잔도 줄 기색이 안 보여 참다 못해 용기를 내어『숙자야 너희 찬밥 남았거든 조금 줄래?』하고 말았다.
엄마가 옆에서『그러면 그렇지 점심을 잡수셨을 리가 있나. 全州서 여기가 몇 리인데―우리 애가 수녀 선생님은 나와서는 절대로 안 잡수신다기에 미안해요』하면서 밥을 새로 지어 차려온 때는 이미 다섯시여서 혼이 난 때가 있었고 유치원 근무의 언니 수녀님 의견대로 도시락 준비를 안 해 가서 봄소풍 땐 점심을 온통 굶고 울상이 되어 돌아온 일도 있었으니 가정방문 전에 단단히 일러 놓고 사실 음식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인 적이 없었으니 먹지도 않고 ○○에도 안 간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이러고 보면 과히 늙지도 않았는데 今昔의 감회가 이다지도 다르구나 여겨진다.구태여 天使然할 필요는 없지만 현세대에 적응한다고 무엇이나 다 받아들이고 사회 인사와 똑같이 할 필요야 없지 않을까?
무엇인가 다른 데가 있는 것이 우리 생활이니까 꼭 필요한 때만 또 드물게 참된 회식의 뜻을 살려서 해야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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