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 행사처럼 치뤄오던 수해를 올해도 어김없이 겪었다.
이틀간 내린 비로 수도 서울이 수도(水都)로 변해버렸다. 신문 보도를 보면、수해의 상처가 아물기엔 아직도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런 곳일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현대판 천민촌」이라 일컬어지는 판자촌이다.
피해는 저지대뿐 아니라 고지대에도 있었다.
하수구 물이 거꾸로 올라온 것이다.
표(票)를 의식하는 민선 동장이나 구청장이라면 저런 수해 요인을 그대로 방치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수해가 생기면 예외 없이 재해대책위원회와 신문 방송 등 공공기관이 구호활동에 나선다. 교회도 느리기는 하나 구호활동에 동참하기 마련이다.
이런 구호활동은 교회가 선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의 구호활동 실적은 공공기관의 실적에 비해「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랑을 부르짖는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성급하게 개탄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가 물량 면에서 공공기관을 따를 수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신자라고 해서 교회의 구호활동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공공기관의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로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의 구호활동을 물량 면에서 왈가왈부 할 수 없다.
그리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다만 문제시 해야 할 것은 교회가 얼마나 스스로 공허화(空虛化)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정신을 대중에게 얼마나 심어주고 있느냐에 있다.
▲스스로 공허화한다는 것은 재물이나 권력이 모두 하느님에게 속해 있음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거기서는 모두가 구원사를 함께 엮어간다는 형제의식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구호금품을 내더라도 어떤 눈치를 보아가며 물량을 가늠질해보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기쁜 맘으로 전달하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교회가 기여해야 할 바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참다운 교회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난리가 한창이던 지난 9일 김 추기경은 시흥 수해지구를 둘러보고 이렇게 말했다.
『냇가에 있던 집들이 모두 떠내려가고 길이 도랑이 되고 시체가 흙더미에 묻혀 있다는데、침통할 줄 알았던 주민들은 무표정했다.
그것을 보고 우리 모두가 비인간적인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교회가 역점을 둬야 할 바를 넌지시 힘있게 일러주는 말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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