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를 들으면 태고적 원시인처럼의 자연적인 삶에 대한 향수가 문득문득 되살아나며 질식할 것 같은 문명의 압박을 벗어나 시원(始原)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우리의 순수의 생기는 더러 솟아오르곤 한다. 남태평양 어느 섬 민속춤에서의 타악기 리듬에서 그러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북 두들기는 소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우리의 놀이인 농악에서의 징이나 꽹과리 소리에서는 그러한 신명을 더더욱 한바탕 느끼게 된다.
남녀노소가 격식 없이 한데 어울려 흥에 겨워 신바람 일으키며 꾸밈없는 몸짓과 노래와 춤으로 쌓인 시름과 아픔을 털어버리는 우리의 놀이마당에 꽹과리나 징 장고가 빠져있음을 상상해보라. 그러한 놀이마당은 비록 펼쳐진다 하여도 허허롭기 그지없을 것이며 어깨춤도 덩실 거릴 리가 없음을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피로의 찌꺼기를 떨쳐 버리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의 표출인 생산적 놀이마당에서 징이나 꽹과리는 없어서는 아니 될 필수적 도구인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친숙하게 우리의 삶 가까이 있는 징과 꽹과리가 성서에서는 어쩐 일인지 그렇게 평가 받는 것 같지가 않다. 우리가 즐겨 암송하는 고린토 전서 13장에 보면『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징과 꽹과리가 좋지 않는 일에 대한 보기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뜻 하고자 하는 바는, 내용 없는 빈 소리만의 울림이나 빈 껍질만의 허위의식, 즉 실천 없는 말 뿐인 사랑을 꽹과리나 징의 울림에 비유하여 지탄코자 함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경향잡지 최근호의「성지순례를 하자」라는 특집기사에서 전해주는 성지순례 행태의 문제점들은 뜻있는 신앙인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전달이었으므로 그것을 읽는 중에 문득 요란한 꽹과리나 울리는 징의 비유가 새삼 떠올랐을 따름이다.
거기서 지적하고 있는 성지순례 형태의 문제점들의 대강을 요약한다면 한마디로 순례가 순례답지 못하다는 점일 것이다. 『요즈음 우리네 성지순례의 모습은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고 배회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며 순례를 한답시고 요란하게 성지에 와서는 순례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대충 훑어보고서는 곧이어『술과 고기로 진탕 먹고 마시며 소란과 추태를 부리는 순례 단들이 있는가하면 성지에 와서 미사를 드리고 봉헌금을 거두어 자기 본당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성지의 야생꽃나무와 괴석들을 마구 채취하는 순례단도 있다』는 것이다.
성지순례의 이러한 부정적 행태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왜곡된 신앙실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생활의 신앙화 내지는 신앙의 생활화가 아닌 신앙의 악세사리화, 신앙의 세속화가 신앙 본래모습을 크게 오염시킨 채 순례의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생활화된 신앙으로 전인적 삶을 우리 가톨릭인 들이 능동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이 시대 이 사회의 절실한 요청인 사회정의 실현의 소금역할을 어찌 자임할 수 있을 것이며 불의를 보고 상대를 향해 불의라고 외칠 힘이 어디서 솟아날 것인가. 그렇게 한다 해도 힘없는 외침, 울리는 꽹과리나 요란한 징소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이번 일그러진 순례모습이 우리 순례자의 전부의 모습이 아님을 말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순례의 자세로 다녀오거나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는 발걸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며 안과 밖이 일치하는 생동적인 신앙을 살아가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다수일 것이다.
2백주년을 아주 성대히 치르고 3백년 대를 언급하고 있고, 남의 나라 부러운 모습으로만 보여 지던 성인을 103명이나 모시고 있는 우리 교회의 현주소는 그때 그 일기를 잘 소화시켜 안으로 다져가는 내실의 모습인가. 아니면 교회건물이나 신자 수는 자꾸 대형으로 지향을 가지만 순례의 왜곡된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지향해야할 본질은 망각해 버린 채 사랑의 실천이라는 알맹이는 빠져버리고 노폐물만 잔뜩 쌓여 고여 있는 웅덩이인 것은 아닌가.
이 시대 교회의 외침은 한판의 생산적 놀이마당에서 어우러지듯 모두를 어깨춤 덩실거리게 하고 일치와 사랑의 혼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 신호로써의 꽹과리 소리여야 할 것이다. 실천 없이 요란하기만한 빈 꽹과리 소리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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