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사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의 이야기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일정한 종교가 없었다.
가족 중의 누가 아프게 되면 삼신할머니라는 분이 와서 울긋불긋한 헝겁을 흔들며 치성을 드리기도 했고 우리집의 주치의인 의사 선생님이 간호원을 대동하여 왕진을 오시기도 하였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던가. 다섯 살짜리 내 동생이 이질을 심하게 앓더니 탈수현상에까지 이르게 되어 종당엔 삼신할머니도 의사 선생님도 그의 목숨을 건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돌아간 다음, 흰 홑이불이 그 애 위에 덮이었다. 슬프기 이를 데 없었다.
대청마루에는 아버지, 삼촌, 이모, 오빠들이 잠도 못 자고 모여 앉아 급작이 닥친 이 악상에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하였다. 새벽 다섯 시쯤 되어서였다.
어머님께서는 맏딸인 나에게 생전 가본 적이 없는 뒷마을의 뾰죽당에 가서 마지막으로 치성을 드려보자고 하셨다. 손가방에 돈을 챙겨 넣으신 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새벽 거리를 나서시었다.
뾰죽당이 가까워진 어느 골목길 쓰레기통 앞에 우리가 이르렀을 때, 거기에는 푸대 조각 찢어진 것을 걸친 거지가 반듯하게 앉아 있다가 우리를 불렀다. 가까이 가보았더니 그 사람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뭉텅 잘려져 나가고, 얼굴이 온통 일그러진 문둥이었다.
나는 전신에 소름이 끼쳐서 도망을 가려 했으나 어머님은 내 손목을 꼭 붙잡고 놓지 않으셨다.
『마님 어디 가세요?』
『뾰죽당에 가요. 우리 애기 살려 달라고 치성을 드리려구요』
『네 성당 말씀이군요. 한 시간쯤 지나야 문을 엽니다. 좀 있다가 다시 오세요. 그런데 마님 배가 고프니 먹을 것 좀 갖다 주세요』
그래서 나와 어머니는 새벽길을 다시 되돌아 집으로 와서 마침 집에 마련되어 있던 떡을 싸다가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때 어머니가 얼마쯤의 돈도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우리는 문둥이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그 성당엘 갔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러나 어머니는 성당 앞에 있는 석상의 여인처럼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드렸다.
그 자태가 어찌나 거룩해 보였던지 나는 하느님이 나의 동생을 꼭 살려주실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그 문둥이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식구들은 모두 앞마루에 앉은 채 아침을 맞았다. 아침 햇살이 우리집 대청마루의 구석구석에 골고루 비치고 있었다. 동생을 덮은 흰 홑이불 위에도 비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떡과 비빔국수와 나박김치를 놓은 둥근 소반이 밤샘한 가족들을 위해 대청 한가운데 올려진 바로 그때였다. 우리 모든 가족은 놀라움으로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의 귀를 의심하였다. 우리의 시선이 동생에게로 쏠렸다. 홑이불이 부시럭 소리를 낸 것 같았다.
그러더니 홑이불 밖으로 동생이 기어나오며『엄마 배고파』하고 말하였다.
동생은 엉금엉금 밥상머리로 기어갔다.
그리고는 밥상 다리를 붙잡고 일어나 앉더니 상 위의 떡덩이를 집어 허겁지겁 삼키듯 먹는 것이 아닌가?
그 동생 필로메나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두 아가의 어머니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이 일을 늘 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이 우리 가족을 당신에게로 부르셨던 최초의 음성은 이토록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6ㆍ25 사변이 나고 우리 가족이 모두 처절한 시련과 죽음에 직면했던 순간까지 우리는 다시 성당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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