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더위에 서울여의도 빽빽한 콘크리트 숲속, 닭장 같은 아파트 한 구석에 들어 앉아 활자의 바다 속에 잠겨 허위적 대고 있는 나에게 납량의 글을 쓰라니 고약하다고나 할는지? 고맙다고나 할는지?
그렇다고 모든 매스콤들이 산이니 바다니 하고 쳐들고 나오는 판에 그런 흉내를 내는 것도 무엇하고…그래서 육신보다는 마음의 더위를 식히는 이야기를 하나 써보고 싶은데 별로 신통한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소박히 내가 이즈막 마음속으로 느꼈던 서늘하고도 오싹한 체험하나를 털어놓을까한다. 그것은 바로 지난 7월 27일 주일미사참례를 가서 독서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떠올린 생각과 느낌인데 즉「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 저들은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하시며 책벌할 뜻을 비치시자 아브라함은『당신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어찌 죄인과 똑같이 보시고 함께 죽이시려고 하십니까? 저 도시 안에 죄 없는 사람 50명이 있다면 그래도 그곳을 쓸어버리시렵니까? 죄 없는 사람을 보시고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하고 야훼께 항의하듯 해서『죄 없는 사람 열 사람만 되어도 벌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낸다는 성경말씀이라 어쩌면 우리네 이 서울, 아니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 설마 의인이 열사람이야 안 되겠나? 그러니 우리의 이 피 묻은 아우성과 죄의 수렁 같은 세상살이도 앙화는 받지 않겠지 하는 안도감이 들어 마음이 풀리고 시원해졌다.
그리고 하느님께 줏어 섬기기를 우리에겐 양심수라는 수많은 의인들이 감옥에 갇혀서도 악형에 굴복하지 않고 있으며 또 순수한 젊은이들의 공분(公憤)이 이렇듯 충천(衝天)하고 있거늘 우리는 야훼님의 축복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하고 알린다.
그런데 이렇게 알리면서도 어딘가 내 가슴 한구석에서는『그런 너희의 현실적 물리적 투쟁의 목적과 그 방법이 야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것이며 또 그것에 부합한 것』이였는지 일말의 위구와 불안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한편『죄 없는 사람』이란 조건을 엄밀히 따져보자 그만 기가 질린다.
더구나 나 자신으로 말하면 요새 쓴 다음과 같은 시로서도 밝혀지듯이 얼마나 책벌받기에 알맞은 존재인가 알 수가 있다.
내 서제(書齊) 문 앞에는 노상이웃집 꼬마의 세발자전거가 놓여있다. 나를 자주 찾는 친구들이『이제는 자네도 두발자전거를 탈 때가 됐는데』하고들 놀린다.
그런데 실상 나는 세발이고 두발이고 자전거를 타 본적이 없다. 우리 또래가 어렸을 적엔 세발자전거는 나오지 않았었고 두발자전거는 나의 형이 대신학생(大神學生) 시절 타다가 애 밴 여인네를 치어서 아버지가 우리 형제에게 금령(禁令)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저 일을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는 것인데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고지키는 것이라곤 고작 그것 한 가지 뿐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하느님의 십계명은 하나도 오롯이 행하고 지켜 낸 것이 없고-.
이제 머지않아 저분들을 만날 텐데 무슨 낯으로 뵈온 담!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마음이 서늘하기커녕 오싹해진다. 이 여름 우리 모두가 육신의 척서(滌暑)만을 꾀불벼락을 두려워하며 영혼의 세척(洗滌)에 나아가는 것이 납량의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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