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있는 일이지만 찌는 듯한 삼복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 더위 속에서도 가정과 사회를 위하여 근로자들은 직장에서 쉬임 없이 일하고 있다. 근래에는 우리나라에서도「바캉스」「행락」「레저」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게 되었다. 주로 도시의 시민층에서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지만「여름휴가」가 매스컴의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휴가 선풍도 자기네와는 상관 없는 일처럼 체념하고 지내는 박봉의 영세근로자들이 또한 무수히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레저」, 즉 여가를 즐기는 일은 비상하게 중요시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지난날에 생각되던 것처럼 팔자 좋은 소비적 환락으로 빈축을 살 수도 있었던 그런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교회에서도 이「여가」를 노동의 조건에서 중요한 한 요소로 명시하고 있다.『노동자들은 노동을 통하여 자기의 능력과 인격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제공받아야 하며 또한 가정 문화 사회 종교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사목헌장이 가르치고 있다.
또 조셉 바질이 쓴「인간 회복의 경영학」에서 보면『현대 문명은 우리가 선택하는 레저의 종류에 따라서 빛의 문명이 되느냐 아니면 불행의 문명이 되느냐 하는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바질은 이렇게까지 레저를 중요시해야 할 이유가 현대에 와서 새로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에서 이야기를 즐기던 집정관은 전차 경기를 즐기던 로마의 황제보다 인간으로서 우수했으며 국왕과 귀족들이 베르사이유 극장을 드나들던 루이 14세 시대는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으로 말을 타고 사냥개를 몰며 사냥에 열중하던 중세기에 비해 대조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가의 사용은 인간과 시대의 성격을 형성할 만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기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여가 사용의 질을 선택한다는 것은 아직 보편적인 일이 못 되며 대부분의 근로자는 가난하고 고된 일상생활 속에서 그저 피로를 풀 수 있을 만큼 쉬기라도 했으면 하는 형편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경제 수준이 윤택한 소수의 사람들도 아직 여가의 정신적 가치와 질을 인식하기에는 도달치 못하여 다만 돈 쓰는 호기를 즐기는 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정신 수준과 경제 수준을 지닌 우리 사회에서, 특별히 가톨릭 신자들로서 무언가 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없을까.
한국의 가톨릭 인구도 이제 백만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중에는 물론 기업인들도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가톨릭 신자가 사장이고 업주이기 때문에 그 직장이 고용인들을 특별히 아끼고, 월급을 다른 직장들보다 조금이라도 낫게 주며, 여름이면 휴가비와 함께 넉넉한 휴가를 준다는 등의 소문이라든가 신문 기사 같은 것을 접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사회적으로까지는 몰라도 교회 내에서는 알려진 가톨릭 신자 기업주가 더러 있으며, 교리 지도자를 초빙하여 사원들에게 강연을 듣게 한다는 소식은 간혹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회사도 실제로 사원들에 대한 월급 수준과 근로 시간 면에서는 좋은 편이 아니라는 소문이 나 있다. 그런 경우 신자 기업주는 성당에 충실히 나가고 영성체도 자주 하고 교회 사목위원 일도 볼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신앙생활이 유지 신자로서의 체면 지키기와 개인적 구령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입장일 것 같다.
오히려 기업체 안에서는 고용인들에게 수도생활의 청빈과 순명을 본딴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러한 경향은 가톨릭계 직장에 흔히 있어온 일이다.
그러나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물질적인 부를 상당히 누리고 인격 수양에 필요한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평신자들의 독특한 권리요 의무이다.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서 하느님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일이야말로 바로 평신자들의 성소이기 때문이다.
기업주 측으로서는 돈이 없다는 하소연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날 만큼 형제들에게 인색한 대우를 하기 때문에 가톨릭계 직장에 인재가 모이지 않으며 그 결과로서는 돈이 없게 되는 사실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인간 존엄과 형제애의 실천, 사업 운영의 근대화, 사회의 비신자 기업체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봉급의 지불, 적절한 유급휴가의 실시, 이런 일들을 이 여름에 바라고 싶다.
시대적으로 불행한 사회일수록 신자들의 세속생활이 형제애의 실천과 낙천성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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