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전북 지방에서 겪은 폭우 피해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 12일부터 연사흘 동안 내린 집중폭우로 인해 강원ㆍ경기ㆍ충북 등 중부지방은 또 다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재해대책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사망ㆍ실종 66명 부상 24명 등 인명 피해 90명과 이재민 3천8백여 명에, 재산 피해 36억의 거액에 달하고 있다. 특히 전주 모악산의 기도원 참사와 강원도 원성군이 산사태 사건은 거의 비슷한 참화로서 많은 선량하고 평화롭던 사람들을 일시에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이러한 산사태는 관계 당국의 좀 더 현명한 예방 대책이 강구되었더라면 능히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해에 대해서 정부 구호 당국은 그 사후 대책에 있어서 비교적 신속 민활하게 구호의 손길을 뻗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 측은 이 점에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피해가 심한 지역인 원주교구에서는 지학순 주교가 선두에 나서서 이재민들의 구호활동에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다른 교구 또는 교회에서는 별로 그러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원주교구에서는 실은 몇 해 전의 수재민 구호에 있어서도 지 주교의 괄목할 만한 국내외를 통한 활동에서 정부 당국의 구호 대책보다도 훨씬 더 유효적절한 구호와 재건의 방법을 구사하여 그 지방의 복구 건설에 지대한 성과를 거둔 것은 관계 당국과 그 지방 주민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은 것도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감안해서 다른 모든 교구에서도 이재 지역의 여부를 초월해서 거교회적으로 구호의 손길을 급속히 뻗혀 주어야 하겠다.
교회가 그 유일한 특징으로 삼고 있는 사랑의 실천은 바로 이런 기회에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주린 자를 먹여주고 헐벗은 자를 입혀주고 집없는 자를 맞아주고 하는 것이 곧 최후 심판의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의 표준인 것이다. 이런 이재민들이야말로 인명을 잃은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살아남은 수천 명의 사람들은 지금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몸을 붙일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외면하고 모르는 채 한다면 이것은 바로「보잘것 없는 이웃을 돌보아 주지 않는 것으로서」그리스도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평상시에 곧잘 한다. 그렇지만 막상 그 사랑을 실천할 만한 기회가 왔을 때에는 그만 입을 다물고 손을 오그리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므로 남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진 이상은 이르렀을 때에는 즉각적으로 자동적으로 행동에 옮겨지는 평소의 훈련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출 필요는 없겠지만 사랑의 실천은 언제 어디서나 나의 도움(정신적ㆍ물질적ㆍ육체적)이 필요할 때에 자동적으로 민감한 작동이 되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교회로서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가상의 재해에 대해서 미리 준비 태세를 취해 두는 구호대책 상설기구의 설치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정부에서는 재해대책본부라는 기구가 상설되어 있고 또 상당한 예산 확보도 되어 있기 때문에 재해 발생시에 임기응변의 긴급 조치가 큰 차질 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부 당국만의 대책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널리 일반 국민의 따뜻한 구호의 손길이 진합태산(塵合泰山) 식으로 모여져야 한다. 그 중에도 가장 조직적으로 이웃 사랑을 전매특권처럼 자부하고 있는 교회가 먼저 솔선 실천해야 함이 마땅하고 또 이것이 교회 선교의 근본 사명이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재해의 구호란 그 성질상 긴급을 요하는 시간상의 요구에 호응하기 위해서는 항상 그야말로「유비무환」의 자세로서 전국적 또는 교구별로 교회 자체의 구호대책의 상설기구를 두고 평소부터 의류 금품 식량 등의 구호 준비를 상시활동으로 전개하여 어느 정도의 구호 물자 비축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 재해 사고가 나더라도 마치 적십자사가 즉각적 활동을 민활하게 발동하는 것처럼 교회도 일반 국민의 구호에 앞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교회의 구호에만 그치고 실천 행동을 수반하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오늘의 교회의 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랑의 위기는 곧 신앙의 위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회 고위 당국의 일고를 촉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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