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 부모님 슬하를 떠나야 되는 게 여자만의 특전인가보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것 성향 취미 기호까지 바꿔서 제2의 자신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그러나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옛부터 어머니들은 그 딸들에게『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석 3년을 지내면 시집살이는 쉽게 되느니라』고 타일러왔던 것이겠지. 석 3년이면 10년이란 세월이다. 그동안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을 삼가고 참고 한 뒤에 여기에 묘책이 발견되고 원래의 자신이 아닌 딴 자신 즉 주위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자신이 형성된다는 이야길 게다.
수녀들이 가정생활을 버렸다고 해서 이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심원한 이상과 아무도 굽힐 수 없는 열의로써 어느 수녀회에 입회하면 각자의 타고난 성격 동향 자유마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고 또 이를 실천해야 되니까 어느 수녀원이나 청원기가 지나고 착의식을 마치면 엄격한 수련기에 들어가고 이 단계에서 통과되면 유기서원이라고 5~6년간의 기한부 서약을 매년 되풀이한 후 마지막 관문을 뚫고 종신서약을 할 때까진 10년 가량 되니 시집살이 석 3년 한 결혼한 여성과 비슷한 고역(?)을 치러야 한다. 다만 즐겨 자원 자진해서 이 길을 걸으려 했고 나날의 어려움을 주님께 보다 가까이 보다 잘 닮는 길임을 믿고 기쁨으로 받으려는 점이 다르다고나 할지?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여러 고비를 넘겨 희노애락을 조종할 수 있는 경지에 달했으리라고 남들이 인정하기 쉬운데 그렇지 못한 것이 실정이고 젊었을 때 막고 누르고 참았던 것이 조금씩 되살아나니 어찌 괴롭지 않으리오?「주님께서 내 편이시고 내 의지와 노력이 따르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랴?」는 의기로 이 생활을 시작한 지도 30여년, 그야말로 엊그제 같은데 현실은 나에게 부끄러움과 때론 슬픔마저 안겨주기에 마치 스스로 위로하듯 걸어온 자취를 더듬으며 주위의 여러 자매들의 생활도 유심히 훑어보게 된다.「시어머니 돌아가시니 큰방 차지 내 차지」라는 옛말은 독한 시집살이를 한 여인이 고뇌와 시련의 한계를 넘어 이젠 평온한 기쁨의 생활로 돌입했다는 뜻일 텐데 우리들 수도자에겐 고비가 몇 배나 되는 듯하다.
첫 소임부터 은퇴하기까지 대략 30~35년간 일선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치면 한 곳의 임기가 4~5년이니 일곱 시댁을 거치는 셈이 된다. 젊을 때는 소임 이동이 재미도 있고 자기를 단련시키는 기회라고 본성적으로도 잘 받아들이게 되고 임지의 여러 인사들도 환영이지만 나이 좀 들어 50이 넘으면 벌써 꺼려하는 공기가 감도는 때가 있다. 오랜 세월에 시달려 그런지 눈치는 더 빠르고 일의 요령은 있지만 추진력은 약한 것이 보통인 듯. 이 나이가 되면 이동되는 것을 훨씬 더 어려워하는데 이들에게 신념과 용기를 주어 긴 경험과 좋은 방안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없겠는지? 어떤 신부님은 자기의 얕은 경험과 급진 성격을 보완할 수 있는 늙숙한 수녀를 보내 달라고 청할 때가 있었는데 참으로 고마왔고 또 그 결과도 좋았었다.
이는 아주 드문 일이고 젊은 층을 환영하는 편이 많은 듯하다. 아마 나이 들면 고집도 있고 함께 뛸 수도 없고 만만치도 않아서이겠지.
수녀들의 임무란 항시 어떤 주관자 밑에서 보좌하는 일이니까 본당에서는 언제나 그렇고 병원, 학교에서도 이런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성격 차이가 있고 능력, 열성의 대소도 있겠지만 저마다 좋은 뜻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것만은 사실일 테니 일의 결과만으로 따지지 않고 동기와 그 애쓰는 경과에 눈을 더 돌려준다면 일곱 시댁 거치는 고된(?) 시집살이에도 기쁨과 보람이 더 크지 않을런지? 숨지는 그날까지는 수녀도 성인이 다 된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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