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주교회의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주교회의의 기능은 약체성에서 오는 부진의 현상이다「바티깐」공의회는 다원화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주교회의를 통하여 일정한 국가나 지역교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도록 규정하였다. (사목직에 관한 교령 36-38).
공의회교회에 의해서 주교회의의 설치와 운영이 의무적으로 규정되었지만 그 기능이 세계적으로 부진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주교회의의 조직이 협의체라는 것과 독자적,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데 그 원인을 들 수 있다. 협의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주교들의 자율적 권한(입법 사법 행정)을 주교들은 자기 교구 안에서 행사하도록 신적제도로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교회의 자체가 독자적 권한을 가지고 주교들의 자율권을 제한해서는 불가하다는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교회 행정적 측면에서는 교황청이 교황의 세계교회 통치권에 입각하여 각국 주교회의에 독자적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국가교회적 권력의 남용이나 불순의 기우 때문에 협의체 형식으로 주교회의 운영을 견지하고 있다는 비판도 현대 정치 구조를 가지고 교회를 볼 때의 이야기이지 교회론적인 이해는 결코 아니다.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은『주교들은 사랑과 형제적 일치로서 사도들에게 위임된 보편적 사명을 의식하고 공동선과 각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힘과 뜻을 같이하여 왔다. 특히 현대에 있어서는 주교들이 날로 더욱 일치 협력하지 않고서는 주교의 직무를 바로 효과적으로 완수하기 어렵게 되었다.
공의회는 주교들이 한 단체를 구성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지혜와 경험의 빛을 서로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여 교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힘을 합하기 바란다』(교령 37)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주교회의가 협의체 형식으로 구성되기는 하지만 약체적 조직을 바라서가 아니고 반대로 주교들의 공동선에 대한 책임감, 형제적 일치, 절대적 협력정신을 인정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주교들의 교회 공동선에 대한 책임감 형제적 일치 절대적 협력 정신의 표본이 되고 있는 것일까? 주교들에게 인정되고 있는 책임감, 형제적 일치, 협력정신이 결핍되었을 때 협의체는 아무런 기능 발휘도 못하고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되게 마련이다. 사제들을 지도하고, 1백만 양떼를 책임진 교주들은 이 점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줄 안다.
그 이유로서 본보 전호가 분석한 바와 같이 주교회의에 대한 기대는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현재 주교회의는 그 기능을 분담하기 위해서 11개의 위원회와 3개의 특별 사목담당부가 설치되어 있고 13개의 전국 기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중 공용어위원회, 교리교육위원회, 교육위원회, 선교위원회, 성직자양성위원회, 신앙교리위원회 등 6개 위원회는 각칭과 총재만 배정되어 있을 뿐 회합 한 번 갖지 못한 채이고, 성서위원회는 담당신부 한 분만이 고사하고 있는, 일치위원회는 과개한 탓인지는 몰라도 1년에 한두 번 몇 명이 모여서 연구회를 가지는 것이 고작, 전례위원회만은 총재주교 자신의 노력으로 전례서 발간을 보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 기구에 대해서는 본보가 전호에서 기형화 현상을 분석 보도한 바와 같다.
그리고 특별사목부로서 가정사목 담당부를 대표하여 춘천 박 주교가 단독 노력하고 있고, 이향신자사목부로서는 태 요한 신부가 협조 없는 단독활동처럼 되어 있고, 해외 교포사목 담당부가 있기는 하나 무개심 속에서 방치되다시피 되고 있다. 고작해야 남미에 1명의 신부 파견이라는 정도이고 구체적 계획 하나 서 있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리고 주교회의의 운영이나 총회의 기능을 보더라도 사무총장 한 사람의 배치와 비밀총회의 지속이라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줄로 알고 있다. 과연 주교회의는 공동선에 대한 책임을 느꼈고 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형제적 일치와 절대적 협력으로서 한국 교회 최고 목자들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문의하고 싶은 심정이다.
최근 구라파를 다녀온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과 같은 호조건의 포교 지역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바 있다. 포교 황금시기에 있는 한국 교회는 소승적으로 자기 교구만을 생각하기에 앞서 한국 전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대승적인 안목을 앞세워야 하겠고 현대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설계 위에서 주교회의를 운영할 때 전체와 부분이 다함께 발전한다는 초보적 상식을 되찾아주기 바란다. 다음으로 주교의 사목직은 주교 공동성(Collegialitas)의 기초 위에서만 인정된다는 것을 주교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안다. 따라서 주교들의 형제적 일치는 모든 이의 일치적 상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끝으로 비협조의 현상은 무책임과 무성의의 소산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인즉 모든 이의 협력정신을 주교들의 상호 협조의 본보기에서부터 출발하도록 시범이 이루어지기를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위하는 마음에서 애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구월에는 극동주교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고 십월에는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가 개최된다고 하니 일대 전환의 기회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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