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라고? 팔순 노모를 서로 모시지 않겠다고 큰아들 작은 아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그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니 자식도 품 안에 있을 때 말이지 다 크고 나면 쯧쯧…』
버스를 기다리느라고 서 있던 골목길에서 중늙은이들이 모여 한탄하는 것을 듣고 나니 야박한 세상 인심이 눈에 보이는 듯. 세상엔 자식 없는 설움, 집없는 설움, 나라 없는 설움 등 가지가지 있지만 집없는 설움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당장에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집이 없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우리집에 가야겠다』
『우리집이 제일이야』
하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리라.
우리 여자들은 옛부터 출가외인이라 해서 친정엘 자주 드나드는 것을 좋은 일이라 생각 않고 시댁보다 만만하다고 친정에 왔다가도 애기가 앓는다든지, 걱정이 생기면 시댁으로 가야 한다는 의무가 친형제에게도 미안하다는 마음까지 생겨 마음이 편치 않다고들 하다.
그런데 수녀들은 가장 만만한 친정이 있다. 시댁(일터)에서 피곤했거나 아프거나 또 늙어서 일을 못하게 되면 찾아들 수 있는 집이 있다. 이는 우리집이요 가장 만만한 친정이요, 老來에 마음 놓고 지내다가 떠날 수 있는 안식처라고 할 수 있다.『가난 서원은 수녀가 하고 지키기는 남이 지키네』『이 모든 것 다 바쳤다면서 온갖 것 다 있네…』등의 농담도 듣는데 얼른 보기에는 가난하게 사는 자라고는 할 수 없다.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언제나 말쑥한 차림, 필요한 외출, 여행도 하고 아프면 치료하고 수술하고 휴양도 할 수 있으니까.
한편『수녀들이 무슨 걱정이 있겠나 자기 몸 하나인데-』하는 이도 있다.
『많은 자녀의 어버이가 되고자 몇 자녀의 어버이 되는 것을 포기한 자들이 신부요 수녀라면 자기 몸 하나가 아님에는 틀림없는데-』
목적과 생활 자체가 알뜰하다고 할까 주택 비품들뿐 아니라 의복이나 작은 소지품 하나에 이르기까지 알맞게 쓰고 아껴쓰므로 오래 보존되니 자주 새로 장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겠지. 수녀원 내의 물건뿐 아니라 학교나 병원 유치원 어디서나 수십 년 된 연장, 그릇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보고 놀라는 분이 있는데 알뜰 살림에서 느는 살림 넉넉 살림에로 발전(?)한 것일는지?
수녀들은 매년 피정을 하러 8일간은 본원에서 오게 되어 있고 궂은 일 기쁜 일에 모이고, 아프면 쉬러 오고, 늙으면 다 들어오는데 받아들이는 쪽이나 들어오는 편이나 아무 마음에 부담이 없으니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다.
가정살이 하는 분은 그만 두고라도 노사제들의 고독 봉양문제 등 어려움을 목격할 때 또 큰 첨례 날 영성체를 못했다고 고민하는 병자, 시계를 잘못 보고 밤 2시에 성당에 가다가 파출소에 잡힌 노인, 첫 미사에 가야 정성을 바치는 것이라고 추운 겨울 문이 열릴 때까지 성당 앞에서 떨고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수도자들의 행복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긴 단체생활의 난관을 뚫어낸 연후에 주시는 갚음이겠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제도이고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 나를 반겨주는 자매들이 있다』고 인정할 때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으니 이 세상에서 1백 배나 받고…』하신 말씀대로 외적인 것만도 백 배가 아니라 몇백 배 주신 듯-. 우리집이요 미안이 없는 친정이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안식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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