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아 달이 유난히 밝다. 아마 보름이 가까와 오나보지? 오늘도 난 화사한 얼굴에 두 눈을 깜박이며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 너의 슬픈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난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희정아, 넌 아까 나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졌지?
나의 소녀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있었느냐고? 글쎄 누구였을까? 난 마음 속 의문을 일으키며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워낙 뚝뚝하고 멋없는 난 많은 친구를 사귈 만한 성격이 못 되었다. 그러나 희정아, 나에게도 인상에 오래 남는 은인들이 계셨단다.
그들은 나에게 신앙을 주시고 한없이 완고하고 대꾸 없는 나에게 온갖 진리의 말씀을 주셨더랬다.
무척이도 다정스레…희정아、지난 주일이었어. 어떤 분이 전화로 나를 찾으신다기에 전화를 받았더니 대뜸『나를 기억하겠어요』하시는 그분의 목소릴 듣고 난『끌라라 수녀님이시죠』하며 즉시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맞췄다.『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난줄 아느냐』고 그분은 크게 놀라셨단다. 하지만 희정아, 10년이 아니고 100년이 흘렀다 해도 난 그분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구? 메마른 새싹에 한 번 내린 푸짐한 비가 그 곡식이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큰 영향이 미치는지 우리가 알고 있듯、그분으로 인해 내 영혼에게 주어지는 푸짐한 그 무엇을 마음속에 항상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희정아 벌써 10여년이 훨씬 넘었나 보다. 나도 너처럼 우린 무엇 때문에 사는가, 산다는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살다보면 저절로 비참한 죽음을 당할 텐데… 하면서 삶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끼며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마냥 안전성 없는 걸음으로 온 산천을 방황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분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시며 나의 슬픔을 터득하려 애쓰셨다. 아! 어찌 그 음성을 잊을 수 있으랴. 슬퍼 말자 웃으면서 살자는 그분의 그 목소리를…
희정아, 그 후 난 1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 말을 되뇌이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외칠 것이다. 어떠한 환경이 주어져도 슬퍼 말자고 웃으면서 살아가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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