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나는 일본「나가사끼」에서 열린 4주간 동안의 공동체 묵상회(MBW)에 다녀왔다.
약 5년 만에 일본에 갔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발전하고 변모된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지만 그보다도 이번 기회에 일본인의 신앙 특히 일본의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왔다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었다. 일본의 인구는 약 1억1천만 명인데 그 중 가톨릭 신자는 불과 35만 명 정도라 하니 인구 약 3백 명에 신자는 한 명이라는 풀이가 된다. 그러면서도 성직자나 수도자의 수는 한국의 2.5배다.
그에 비하여 한국은 인구 3천5백만 명에 신자 수는 약 백십만이고 보면 약 30명에 신자가 한 명이 되는 셈이다.
결국 가톨릭 교회의 교세가 신자 수에 있어서 일본보다 한국이 10배나 강하다는 셈이 된다.
내가 일본과 한국의 신자 수를 비교한 것은 한국의 신자가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물론 신부나 수녀를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생각하면 정말 한국 교회는 자랑스러운 교회임에 틀림없다.
신부나 수녀가 전교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헤메여야 하는 일본의 실정을 생각하면 주일미사 때 성당이 비좁아서 고민을 하며 성직자 수도자의 부족으로 애타는 한국의 교회는 참으로 은총받은 교회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우리들은 얼마나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반성하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일치가 없다. 신자들은 기계주의적 신앙에 빠져 있다. 사목단체는 활기가 없고 만네리즘에 빠져 있다. 우리 본당 신부님은 지나치게 폐쇄적이다 등등 불평을 하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이러한 불평의 소리가 전혀 이유없는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고 교회를 쇄신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자기가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가 있으며 나아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 신자보다 10배 더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를 학대하고 있지 않았던가. 자기 본당을 먼 거리에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던가. 성직자나 수도자나 교우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였는가를 반성해야겠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이기주의나 자기 합리화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와 자기 교회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현존하고 계시는 하느님 즉 성령의 뜻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교회가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하리 만큼 그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부하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감시하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님 곁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기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나와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김영옥 수녀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한용희 교수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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