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은 한국 순교복자 대축일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축일이지만 금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79위 순교자가 시복된 지 50년을 지낸 하반세기의 첫 해가 되고 둘째는 한국 순교복자 중에도 가장 뛰어난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지 13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또 이러한 때를 계기로 하여 한국의 103위 복자 외에 순교자 중에 다시 사실이 뚜렷한 분들을 복자위에 오르도록 하고 또 기위 시복자 중에 김 안드레아 신부를 위시하여 많은 복자들을 성인품에 오르도록 하기 위하여 한국 전교회가 일치하여「한국 시성시복운동 위원회」를 추진하여 오던 바 지난 9월 16일(김대건 신부 순교일) 정식으로 발족을 보게 되었음은 본보에 보도된 바와 같다.
시성시복운동의 개요를 보건대 과거에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김대건 신부 시성운동과는 달리 그 규모를 넓게 하며 지난 사대박해와 그 후의 6ㆍ25 등을 통한 모든 순교자의 사실을 충분히 조사하여 그분들을 전원복자위로 시복하고 또 시복된 복자들을 모두 다 성인품에 오르게 하자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듣는 바에 의하면 순교자의 시복에 있어서는 순교 사실만이 확정히 또 충분히 입증되면 그 가능성은 비교적 용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순교복자의 시성에는 적어도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기적이 한 개 이상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복시성운동의 요결은 결국 순교자들의 사료 수집 조사에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복자들로 인한 어떠한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면에 대하여 본운동의 지시 방침에 따라서 각계각층의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열성적인 기도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은 일시적인 성세에만 그칠 것이 아니고 꾸준하고 인내성 있는 항구적인 운동으로서 전교회가 총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한국 선교 2백주년 기념사업의 일단으로서도 이 운동은 매우 시기 적절한 것이고 또 이것을 계기로 하여 한국 교회의 신앙에 순교적 정열을 불태우게 하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새삼 우리 순교자들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나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의 현상에 비춰볼 때 다시금 순교 선조들에 대한 존경이 더해지고 우리의 신앙이 부끄러움을 더한층 느끼는 바이다. 우리 순교 복자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그 당시의 권력과 국법을 상대로 하여 하느님의 신앙에 따른 진리와 정의와 양심과의 대결에서 육신의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고 영원한 생명의 승리를 거두신 분들이다. 그분들은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에나 육신의 쾌락 등을 초월하고 생명까지도 초개 같이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진리와 양심의 명하는 정의를 위해서 치명하신 것이다. 이보다 더한 신앙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또 있겠는가! 그러므로 순교자 곧 증거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필칭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곧잘 말한다. 그러나 정말 현대를 사는 우리 교회가 우리 순교 선조들과 같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있는가. 오늘날은 신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고 믿어야만 했던 그런 시대와는 판이하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순교는 요구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면 순교정신의 현대적 의의는 생명을 바치는 데 있지 않다. 오직 자기의 어떠한 이익만을 희생하는 정도로서 충분한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나 명예나 재물이나 육신의 안락이나 등등의 생명과는 관계없는 가치의 것들이다. 이러한 가치들과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와 또 하느님이 주신 양심의 가치와의 결대에 있어서 아주 쉽사리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 실상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신앙은 원래가 쉬운 길이 아니다.
십자가의 길이라고 한다. 하느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진리를, 정의를, 사랑을, 평화를 위하여 전 인생을 투입하여 살겠다는 굳은 결단을 내린 인생관이고 생활 태도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오늘에 있어서 우리 순교 선조들을 시복시성의 지위에 오르게 하여 감사와 공경과 영광을 드리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겠으나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먼저 순교자들의 정신을 만분의 일이라도 실천하는 의미에서 오늘을 사는 순교정신에 보다 더 많은 신자들의 자각과 반성과 분발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아울러 생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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