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침 7시.
성모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 복자성당 고등부 일동 30명은 성당 문을 나섰다.
오랜 기다림으로 그 길어진 목들、쉴새없이 재잘대며 버스에 올랐다.
낙산에 도착하니 먼저 온 선발대 일행이 반겨주었다.「쿼바디스 도미네」를 연방 외치며 우리의 숙영지에 도달한 것이 오전 8시 30분. 빽빽한 포플라숲、땀을 씻어주는 매미소리 흐르는 낙동강물을 바라보며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새삼 깨달았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피조물이었다. 대강 짐을 정리하고 캠프를 설치한 후 뒤이어 오는 중등부 일행을 맞이했다.
첫날부터 바쁜 일과는 시작되었다. 식사 준비 설거지 쓰레기 처리 군대식 내무 사열 등등 익숙치 못한 생활에 당황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재미있었다.
나 혼자만이 독차지할 성싶은 포플라에 어둠이 깔리고 우리는 첫 밤을 맞은 시악시처럼 있었다.
이 밤도 예외가 아닌 모양 역시 고요하다. 이튿날 새벽 기상을 알리는 남학생의 둔탁한 노랫소리에 눈을 떴다. 조원이 모두 모여 아침기도를 올리고 세면도구를 들고 강으로 나갔다. 포플라나무 그늘에서「이런사람」과「아담아 너는 어디에」라는 제목의 강의를 들었다.
정말 행복은 물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따르자는 내용이었다.
황혼이 질 무렵 예수께서 끝없는 고난과 사랑으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주님의 은총만을 갈구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그 사랑을 심어 주십사고 기도했다.
명상의 시간에는 서로의 괴로왔던 일、그리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쁨과 감사로 충만되어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다.
새벽 4시쯤 되었을까?
화장실에 갈려고 텐트를 나왔다가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삼라만상이 다 잠들어 있는데 교리 선생님들께서 우리 텐트 주위를 순찰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 때문에 밤잠 못 주무시는 분들、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단꿈을 꿀 수 있는 우리들、어제의 강의에 이어「퀴바디스 도미네 영광의 길」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주님께서 걸으신 영광의 길을 어떠한 신음 고통 괴로움이 따를지라도 감수하며 걸으리라는 결의가 모두들에게서 엿보였다. 난생 처음으로 하느님께 올리는 편지를 썼다. 미지근했던 신앙에 대한 후회와 다짐과 소망이 송두리째 담긴 편지였다.
헌신미사를 지낸 후 불의 예식이 시작되고 우리는 횃불을 바라보며 숲길을 걸었다.
누구의 손엔가 돌려진 횃불은 나를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가는 듯했다.
보름달이 모래사장 위를 은은히 비추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이젠 우리에게 주어진 그 무한한 공간이 아쉬운 듯 낙산에서의 마지막 밤이 신부님의 점화로부터 시작되고 내 가슴 속은 날개 찢긴 비둘기의 아픔마냥 허전하기 짝이 없다.
하느님께 드리는 편지가 태워졌다.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나의 소망도 하느님께 전해지기를 희구하며「오늘 이 시간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리라」고 내 마음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달빛 아래의 포크댄스와 함께 낙산의 마지막 밤도 가고.
30일 떠나기 전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언제든지 나 자신을 되찾지 못할 때 나에게로 띄워 보낼 것이라 했다.
이제 짐을 챙겨야 할 시간이다. 잠시 이곳 낙산에서의 3박 4일을 생각해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치 그분의 말씀을 들려주는 듯 나를 숙연케 해주던 저 포플라나무 가지들의 속삭임과 정이 든 풀 한 포기와의 대화를 그리고 주님의 은총을 심어 주십사고 수없이 기도하며 지샌 감사로 충만했던 그 밤들의 아름다움을 행여 잃을세라 조용히 가슴 속에 다짐해본다.
다시는 주님을 거스리거나 나 자신을 망각하는 인간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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