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지난호 보도에 의하면「봉사하는 교회상 심는 화양동본당」이란 제하의 큰 기사가 눈에 띄었다. 화양동교회는 신자수 2천 남짓한 서울 변두리의 한 가난한 본당이다. 그러나 그 본당은 철저한 봉사정신과 조직적인 활동으로 교세 확장과 이웃 돕기에 앞장을 서고 있어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보건대 이 본당은 지금부터 6년 전에 신설되어서 아직도 가발공장으로 쓰던 창고 모양의 건물을 성당으로 쓰고 있을 정도로 갖출 물건을 다 갖추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①자력으로 본당 내주기를 힘써 이웃본당 신설을 도와주거나 본당 구역 내의 원거리 지역에 본당을 신설하기 위한 거액을 갹출하였고 따라서 자기 본당의 신축을 5년 이후로 연기하는 용단을 내렸고 ②이웃돕기운동에 각종 창의를 발휘하여 매일 한 번의「이웃돕기주일」을 정하여 그날의 헌금을 이웃 돕기에 쓰고 있다. ③지역사회의 불우한 소녀를 위한 야간학교를 운영하여 지역주민으로부터 봉사하는 교회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구체적 사실은 참으로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모델 케이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본당의 성당 건축과 본당 살림 내주기 문제만 하더라도 오늘날 현재의 교회 일반 현상으로 보아서 대개는 성당이나 사제관을 거창하게 혹은 화려하게 건축하는 데 많은 관심을 주력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가 건물이 아닌 이상 외형적 건물에 치중한 나머지 눈에 보이는 교회는 풍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신비인 교회의 알맹이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고 말 염려가 있다.
원래 교회가 가난(淸貧)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물질과 외형의 가난함과 마음의 가난(겸손)과 동시에 내면적인 영성과 사랑의 풍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로 외형 풍요와 내면의 탐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지고 있다.또 본당의 지역적 및 인원적 규모에 있어서도 지역의 교통 형편이나 신자 2천 명 이상의 경우에는 본당을 분립 신성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2천 이상의 신자를 한 사람의 사자를 한 사람의 사제가 사목한다는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성을 넘는 것이고 또 신자 상호간의 사랑의 사귐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대도시 본당의 오늘의 실정은 3~5천 명의 신자를 가진 교회가 많고 그러면서도 좀체로 본당의 살림 내주기에 주저하거나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음은 유감된 일이다.
둘째로 이웃돕기운동이야말로 교회의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우리는 사실 말로는 사랑을 부르짖지만 실제로 교회가 이웃을 위하여 특히 가난한자와 불우한 자를 위하여 항구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적은 것 같다.『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로 화양동본당의 한 주일분의 헌금을 계속적으로 이웃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그 실천의 표본이 될 것이다. 우리 교회가 보통으로는 성탄절 등의 큰 축일이나 어떤 재해 당한 자를 위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구하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너무나도 적지 않았던가.
또 셋째로는 교회가 소속하고 있는 지역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 참으로 봉사다운 봉사를 하는 데에 너무나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던가 반성해야 하겠다. 교회는 세계의 구원에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재론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교회는 너무나 세상을 세속이란 안목으로 경시하거나 소외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지역사회의 환경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려는 자세를 취해온 것이 아니었던가. 교회가 일반 사회단체와 다른 특징의 하나는 사회를 위한 타인을 위한 특별한 모습의 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봉사를 통해서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세상의 누룩이 될 수 있는 것이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외적 모습의 웅대함이나 화려한 것이나 엄숙한 것에 집착하거나 신자의 수와 성사 행사의 통계적 숫자에 구애되기보다는 진실로 교회의 본질인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인류 구원의 보편적 성사의 역할을 문자 그대로 드러내어야 할 때가 왔다고 보여진다. 현대인들의 무신론이 팽배해지고 교회 내 신자들의 냉담들이 증가하는 책임의 일부는 교회가 오늘의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상을 드러내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을 차제에 다시 한 번 각성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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