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교회는 이 나라의 그리스도교적 복음화와 민족 구원을 위해 그리고 국가 민족발전을 위해 뒤늦게나마 깨달은 바 있어서 해방 후 즉시 여러 군데 많은 학교를 설립했었다. 참으로 장한 일이요 민족사에 길이 빛나는 공적이다.
옛날 전교신부들이 못한 일을 우리가 했어야 할 당연한 일인 것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해방 후나마 이 일에 착수한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자위하고 싶다. 학교 설립 후 약 30년이 경과된 오늘에 와서 우리 교회학교의 실태는 어떠한가? 초창기는 학교 설립과 운영에 급급했었고 그 후반기에 와서는 확장과 정비에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톨릭 학교 본연의 사명을 언급할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
교회 당국의 설립 이념은 분명히 복음화이고 복음적 생활을 심고 구원 소식에 질서 지워주는 복음적 구원에 뜻을 두었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 밀도가 극히 적은 이 나라에서 그래도 학교 교육을 통해 비율을 높여 보겠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바티깐」공의회의 학교 선언문을 살펴보자.『학교 내에 자유와 사랑의 복음적 정신으로 충만한 학교 공동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성세로 말미암아 새로운 하느님이 백성이 된 그들이 새로운 피조물로서 성장하도록 도와줄 것、학생들이 세계 생활 인간에 대한 지식이 신앙으로 비쳐지도록 그리고 인류의 전문화를 궁극적 구원 소식에 질서지어 주는 것이다』이상과 같이 간단히 가톨릭 학교의 사명을 밝혔다.
가톨릭 학교의 실태는 어떤가?
학교마다 교장과 교감 정도는 대개 신자들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교사들 중 신자는 반수가 되면 많은 편에 속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종교 교육은 어떤가?
문교 시행법에 학교 교육과 과목상으로는 종교 과목도 교과서도 없고 시간도 없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각급 가톨릭 학교는 과외 시간을 이용하여 주당 종교 시간을 학급당 1시간 정도 할애, 가톨릭 교장회에서 편찬한 종교 교과서를 가르치고 있다.
종교 교사는 대개 수녀들이나 평신자들이라 교리 성적을 주는 학교도있고 전연 무관한 학교도 있다. 그나마도 아무 것도 없고 사회 시간을 종교 시간으로 넘어가는 학교도 있다.
전혀 종교 시간이 없는 학교도 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개교기념일에 전교생을 모아 놓고 미사 드리는 것이 고작이다. 학교 분위기는 어떤가?
가톨릭 이미지가 하나도 풍기지 않는다. 신자 학생들이나 신자 교사들이 방과 전후 기도를 하는 것이 눈에 띄느냐 하면, 전연 없다시피 되어 있는 실정이다. 교실마다 십자고상은 있다.
교정에는 주보성인이나 성모상이 있는 학교도 있다. 그러나 설명은 없다.
마치 장식물처럼 거저 있을 뿐이다. 천주교 신자들의 생태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신자 학생이나 신자 교사들은 교회 학교에 있으면서 위축된 것 같고 일체 신자다운 냄새를 풍기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교장과 간부 교사들은 법에만 얽매여 해야 할 종교 교리시간이 없었으면 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이유는 문교법상 종교 교리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나마 그 종교시간을 갖고 있다고 큰소리 치는 인상이다. 어렵기는 하겠지만 이런 상황 하에서도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방학 때 교사들을 피정시킬 수도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면서도 가톨릭 학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애초 설립자의 취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심하게 말하면 일반 국공립학교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톨릭 학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모든 미숀학교가 다 그런가?
절대로 아니다. 개신교 학교에서는 주에 한 번 전체 예배시간이 있다.
또 성경공부 시간이 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기도한다.
모든 교사들이 의무적으로 다 기도로 수업을 시작한다. 신자건 비신자건 관계 없다.
그리고 연 1회 또는 2회 학급별로 특별기도 날이 있다. 3일씩이나 단체기도를 한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학생들이 헌금도 한다. 백 원 이상 헌금도 한다.
그리하여 그 헌금으로 학급마다 종교장학회 장학기금으로 사용한다.
얼마나 복음적인 학교인가? 그래서 학교는 전체가 다 종교 분위기가 생생하다.
젊은 학생들은 거의 반수가 다 예배당에서 주일 예배를 본다고 한다.
이렇게 그들은 참으로 종교 학교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도 꼭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같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나라 문교법하에 있지 않는 사람들인가.
우리 교회가 우리 실무자들이 그들만 못하게 하느님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모르는 사람들인가? 교장만 신부이고 수녀이고 신자이면 그것이 가톨릭 학교냐.
아니면 겨우 주당 1시간 교리로써 사명을 다한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인가?
학교에 뿌려진 재산은 귀중한 하느님의 재산이 아닌가?
그 책임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 차제에 우리는 깊이 반성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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