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를 때려잡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무엇일까? 온갖 부정과 비리, 폭력 특히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잔악한 작태의 발상근원을 일격에 폭파ㆍ괴멸시킬, 이를테면「미사일」같은 그런 무기는 없을까? 참으로 답답하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마지막 순간까지 여기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밝히지 않았었다. 하느님도, 사랑하는 아들이 정치적 모함에 몰려 죄 없이 처형되는데도 한 말씀도 없었다. 하늘에서도 십자가에서도 땅에서도 오직「침묵」만이「있」었다. 위대한 침묵. 이것이 우리의 무기인가?
사랑의 영혼을 놓고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치열한 전투장면을 그린 시인이 있다. 물론 이것은 만든 이야기로, 교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괴테의 걸작, 「파우스트」에 있는 이야기다. 「파우스트」박사의 영혼을 놓고 마귀「메피스트」(급수로 치면 상사쯤 되는 대단치 않은 악마다)는 하느님을 찾아가 무엄하게도 내기를 하자고 한다.「파우스트」가 세상에 있을 동안은 그가 원하는 모든 향락의 뒷바라지를 할테니 죽을 때는 그의 영혼을 저한테 넘겨주어 지옥으로 데려가게 해주십사는 것이다. 악마「메피스트」는 그리 대단치 않은 마귀새끼라고 앞서 말했지마는 그 문벌은 마귀사회에서는 다 알아주는 쟁쟁한 혈통이다. 우리 원조할머니「이브」를 꾀어「아담」의 신세를 망쳐놓고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놓은 저 유명한 배 암마귀가 그의 이모아주미다. 그런 혈연으로 해서 사람을 죄로 유인하는 데는 그 실력을 알아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과 악마의 도박이 시작된 것이다. 신식말로 하면「파우스트」박사의 영혼을 판돈 대신 놓고 하느님과 악마가「고ㆍ스톱」을 한다는 말이다. 「파우스트」박사는 90평생을 살면서 마귀의 도움으로 세상의 몹쓸 짓, 못된 짓 모든 악행은 골라가며 다 한다. 그의 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드디어 박사의 임종이 왔다. 승리를 확신한「메피스트」는 새끼마귀 일개 소대병력을 이끌고「파우스트」의 영혼을 압송하러 출동한다. 배꼽이 생명의 입구인지라,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틀림없이 배꼽으로 나오리라고 믿었던 그는「파우스트」의 배꼽 아래로「날개를 펴라」고 부하들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새끼마귀들이 박사의 배꼽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옆으로 산개하여 영혼이 나오기만 기다린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영혼이 머리로 나와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상으로 올라가고 있지 않는가?「메피스트」는 당황했다. 탈환을 위하여 총 추격을 명했다. 천사들은 뒤쫓는 마귀들을 향하여 매괴꽃을 송이송이 뿌렸다. 매괴꽃을 맞은 마귀들은 맥을 못 쓰고 퇴각한다. 악마를 물리치는 미사일은 매괴꽃 이었던 것이다.
금년 2월23일, 필리핀의 가톨릭방송「라디오 베리따스」는 신 추기경의말씀을 전국에 내보냈다. 』유혈의 참사를 피하기 위하여 거리로 나가자!』지도자요 목자의 외침이다. 지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일 먼저 뛰어나온 것이 약 1백 명의 신학생들. 30분후에는 천명이 넘는 수녀들이 달려와서 신학생을 보호하듯 둘러쌌다.
그동안 부근에 있는 각 성당에서는 본당신부님을 선두로 교우들의 대부대가 속속 들이닥친다. 순식간에 신학생과 수녀님들을 핵으로 수십만 교우들의 대집단이 둘래 약10킬로의 반정부 군대 주변을 빈틈없이 막아섰다
그때다. 과연 정부군의 전차대가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그 크고도 긴 포진들을 추켜들고 밀려왔다. 교우들의 대집단을 정면으로 겨냥해서 밀려드는 모습이 흡사 악마가 작당을 해서 들이닥치는 것 같더라고 그 광경을 목격한 수녀님이 전하고 있다.
이때 가슴에 성모상을 안은 한 여교우가「루르드의 성모」성가를 선창하듯 노래 불렀다. 그 성모성가는 순식간에 대 합창이 되어 포효 같은 탱크소리를 삼켜버렸다. 성가의 대합창이 끝나자 역시 성모상을 가슴에 안은 한가정부인이 선두 탱크 앞에 나서며『나와 성모님을 깔아뭉개고 지나가라!』고 소리치며 큰소리로 매괴신공을 시작했다. 묵주의 기도다. 수십만 대 군중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손에 묵주를 들고 여기에 호응하고 기지 내에 있던 반정부군 병사들도 그 자리에 꿇어 같이 기도했다. 50만 명이 넘는 대군중의 묵주의 기도가 동시에 뿌리는 매괴의 그 향기로운 꽃송이가 육중한 탱크의 전진을 막은 것이다. 앞서오던 탱크가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뚜껑이 열리고 정부군 병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기관총대신 밤하늘에도 희게 빛나는 묵주가 보였다. 『이 이상 명령에만 따르는 것은 죄악이다. 나도 같이 기도 하겠다』탱크에서 뛰어내렸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총을 들고 탱크 뒤를 따르던 보병들도 총을 버리고 묵주를 들었다. 23일 밤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국민적인 묵주의 기도는 수도「마닐라」로. 도 전국 방방곡곡으로 메아리치고 필리핀 밤하늘에 매괴꽃 향기가 가득했다.
우리의 무기는 투석도 화염병도 아니다. 우리의 무기는 묵주다. 우리는 때리면 맞고 찌르면 피를 흘리고 죽이면 죽으면서 매괴꽃을 뿌리는 것이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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