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영문 잡지가 도처에서 굉장한 인기가 있은 적이 있었다. 그 인기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하나의 원인이 그 잡지사는 쉽게 간단하게 표현한다는 것을 사의 방침으로 삼은 데에 있다고 한다. 이젠 거의 모든 잡지와 신문이 단문과 단문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긴 이 바쁜(?) 세상에서 간단명료 신속하게 의사 전달을 할 필요가 있음을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가 있다.
궤도를 걸어놓고 브리핑하는 것은 군대에서나 어쩔 수 없이 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젠 모든 관공서와 회사에서 학교에서 아니 심지어는 교회의 교리시간에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힘 안 들이고 생각 안 하고 편리하고….
이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시인들까지도 모여서 한다는 소리가『난해시(難解詩)는 시가 아니다』(?) 라는 말을 예사로 하게 되었다. 아비규환인 다방에서 부랑배(浮浪輩)가 술술 읽을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는 소리를 장사꾼의 외침으로 듣는다면 이것은 정말 지나친 것일까? 헤밍웨이가 현대에서 인기를 끌 소질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가 영문을 타락시켰다는 점을 비난 받아 마땅하고 헷세가 독문(獨文)을 타락시켰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바로 단문을 썼다는 점에서 쉬운 말로 간단하게 분명히 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 있고,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내용의 것이 있다.
필자는 사람들로부터 철학은 난해하며 특히 그 표현이 애매모호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래서 일부의 철학자들(논리실증주의자)은 말의 애매성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론 그들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한 것 같다. 하이데가는「말은 진리의」집이라고 말하면서 말의 애매성, 진리의 애매성은 바로 인간의 삶의 근본 성격이라고 갈파했다. 불가(佛家)에서 선(神)이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한다든가 도가(道家)에서는 道는 현지우현(玄之又玄)이라고 한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그 자체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모든 것이 애매성의 부동(浮動) 속에 머물러 있으며 무한히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잘 끄집어내어지고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진리는 엄밀히 말해서 지속적(持續的)인 학습과 노작(勞作) 속에서만 밝혀진다. 그러나 이 노작은 결코 이 세상에서는 다 해결되지 않고 오로지 끊임 없이 추구되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철학이 만인에게 쉽게 읽혀지고 전달되는 것처럼 보인다든가, 자연과학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독단(獨斷)에 빠져 있거나 속임수일 가능성이 있다. 진리는 물건을 소유하듯이 확실하게 소유하거나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설사 우리가 진리를 고심 끝에 한 번 붙잡았다고 믿어질 때에도 우리는 성급하지 말며 여유를 가지고 우리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양찰(讓察)을 해야 할 것이다.
생각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 욕심 사납게 철학을 쉽게 명료하게 씌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우견(愚見)인지 모른다.
은총 속에서는 진리는 분명한 것일 텐데…
▲지금까지 한용희씨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진교훈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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