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식이 강하기 마련인 지성인들을 만나 요즘의 안부를 물으면 흔히『살아남기주의로 잘 지낸다』고 대답하며 자조하는 표정을 짓는다. 역겨운 현실에 체념으로 적응하려는 자아포기주의랄까. 예수님도 오늘의 지성인들처럼 살아남기주의로 처신했다면 십자가에 무참히 처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살아남는 슬기로움이 아니라「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택했다. ▲순교자 이승훈을 비롯한 한국 교회의 창설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대륙에 사절로 갔으면 틈 나는 대로 관광이나 하며 재미나 보고 오는 것이 슬기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출세에 도움되기는 커녕 어렵게 얻은 벼슬까지 박탈 당할 천주학을 배워 와서 혹독한 형별까지 받았다. 그래도 우둔하게 굽히지 않다가 위문지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오늘의 성직자 수도자들도 살아남기주의 눈으로 보면 마냥「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하필 그리스도의 길을 따른다며 가난 순명 봉사 희생의 길을 기를 쓰고 걷고 있다. 그러면서『우리가 자랑할 것은 십자가뿐』이라고 외친다. 오늘의 평신도에게서도 순교 선열에 버금가는「어리석음」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교회 전체가 이런「어리석음」으로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 것은 그 어리석음이「십자가의 어리석음」이요 십자가의 어리석음은 바로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교회운동으로 성장한 꾸르실료운동의 운영 실태에서 이 같은 어리석음의 표본을 손쉽게 엿볼 수 있다. 꾸르실료 수강생들은 본당 신부가 추천하는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하루가 아쉽게 뛰어야 할 바쁜 생활인들이지만 3박 4일을 완전히 할애하여 수강 중의 생활비를 자담하여 꾸르실료를 받는다. 제 돈 내고 사서 고생을 하며「빨랑까」라는 지원금까지 보조한다. 그런데도 이 운동이 날로 번창하는 주요 이유는 운영을 완전히 자율에 맡겼기 때문이다. ▲교회운동은, 특히 성인들의 교회운동은 자율적으로 운영될 때, 바람직한 십자가의 어리석음도 그만큼 발휘되고 또한 성공한다. 그 어리석음은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어리석음임을 직시해야 한다. 꾸르실료 운동이 교구 예산의 지원하에 타율로 운영됐다면 아마「초천박살」이 났을 것이라는 게 한결 같은 의견이다. 본당이나 교구 행사가 자율적이냐 타율적이냐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역력히 보지 않았는가. 교회 당국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곧 구원의 길이라는 진리만을 가르치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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