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기후의 영향을 받은 만주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개구장이 시절 나는 썰매 타기를 무척 즐겨했다.
너무나도 재미가 나서 손발이 얼어 터지고 동상이 생기는 것도 모르고 썰매를 타고 놀았다. 썰매 타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여간 노력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 눈이 많이 와야 하는데 눈이 적으면 다른 데서부터 눈을 쓸어 모아야 하고, 썰매도 좋아야 하고, 또 높은 언덕이 있는 데로 멀리 가야 하고, 높은 언덕까지 그 미끄러운 길을 무거운 썰매를 밀구 올라가려면 찬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히고 대단한 인내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높은 언덕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릴 때의 그 스릴과 쾌감을 생각하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만 같았다.
어른들이 고대하는 봄이 돌아오는 것이 나는 싫었다. 또 얼음판에서 팽이 치고 달리는 기쁨도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유학을 가서 나는 말과 풍속을 빨리 익힌다는 구실을 만들어 중고품 텔레비젼을 한 대 샀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바보상자」를 열심히 보았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저질인데다가 재미가 없고 볼 것이 없다는 점을 나는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처음 얼마 동안은 뉴스와 연극 음악 영화만을 보다가 나중에는 운동 경기의 중계도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것이 자동차 경주였다. 어린 시절 내가 썰매 타고 즐기던 것을 회상하면서 어른들이 엄청난 비용과 막대한 시간을 들여 목숨까지 내걸고 하는 자동차 경주도 재미는 있었다. 사람을 흥분시키기에 알맞는 요란한 소리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스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항차 내가 이렇게 느낄 때엔 경주하는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신날까?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날은 시가가 철시하다시피 한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돈 내기를 하고 야단법석이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번번이 사람이 다치고 죽어도 정부에서는 아무런 제재를 하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여러 면에서 경기 운영을 직접 도와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들뜨게 하고 미치게 만들다시피 하는 것이 자동차 경주뿐만 아닌 것 같다. 축구 시합도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대단한 인기가 있다. 점차로 거의 모든 경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금엔 야구 시합이 대단히 인기를 모은다. 추운 겨울을 빼놓고는 일 년 내내 시합이 있다. 야구 시합 중에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고등학생 야구 시합이라고 한다. 야구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돌발적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실수(에러)가 승부를 판가름하기 때문에 스릴이 만점이라고 한다.
야구 선수들은 명색이 학교 선수이지 직업 선수와 다를 바 없고 자기 학교의 담임선생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후이찡거는「인간은 유희하는 동물」이라고 일찌기 말한 바 있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모태 안에서도 놀기를 좋아해서 산모를 괴롭힌다. 그러나 노는 것엔 한계가 있고 절도가 있어야 한다. 어디서나 항상 인간은 자제력이 요구된다.
어린 시절에 얻은 동상은 그 후 30년을 나를 괴롭힌다. 이젠 그 보속이 끝난 것 같지만 날씨가 추우면 나는 각별히 손발에 조심을 한다. 열띤 운동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가버린 후의 황량한 경기장을 둘러본 사람은 직장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불가사의와 신화를 나는 사고를 상실한 운동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본다. 그 치졸하고 천박함을 운동 경기에 그 엄청난 시간과 돈을 뺏기는 것과 성의 문란과 방종은 본질적으로 하등의 차이가 없다. 자제력은 정신의 본질이다. 자제력을 잃은 사람, 사고하기를 포기하는 자는 얼빠진 자임에 틀림없다. 1백m를 9초가 아니라 3초에 달린다고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