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휴식과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등산도 하고, 들놀이와 물놀이에도 가고 운동을 직접 하거나 남의 운동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 밖에 낚시질, 장기와 바둑, 화투와 트럼프놀이 등등 놀이의 종류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어떤 놀이건 간에 놀이는 노동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노동이 일차적이라면 유희는 이차적이다. 인간의 노동이 법칙에 따라야 하고 목적이 있어야 하듯이 인간의 유희도 그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고 목적이 엄연히 있다.
3년 전 어느 가을날 나는 서울 근교의 산에 혼자 간 적이 있다. 도심지에서 이렇게 가까운 데에 그렇게도 경관이 좋고 묽 맑고 공기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를 새삼 감탄했다.
여러해 동안 외국에 있으면 두고온 고향의 산천이 그렇게도 보고 싶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고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야외로 나왔을 때 누구든지 감회가 새로우리라.
그러나 자연을 찬미하고 싶던 감상적인 나의 기분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산에는 새들과 나무와 꽃보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학생들 직장에 다니는 성인들로 온 산이 붐비는데 동대문시장보다 더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 같았다. 통기타와 아코디온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축음기 이것도 부족해서 앰프와 확성기까지 끌고 올라와서 떠들어댄다. 왜? 무엇 때문에 산에까지 와서 그래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을 한 후 나는 혼자는 물론이고 모처럼 친구가 권해도 다시는 산이나 들에 가지 않기로 작심을 했다. 작년부터인가 산에는 기타 같은 악기를 못 가지고 간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부엌칼도 부엌 밖에서 함부로 휘드르면 흉기가 되듯이 樂器도 제 구실을 못하면 惡器가 되니 제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산불의 대부분의 원인이 등산객의 부주의 탓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의 등산객은 요산요수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산에 오는 부랑배를 말하겠지만….
한국에서는 대학교 지척에 당구장과 기원이 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당구를 한다든가 바둑 두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최근엔 학교 구내에서 대낮에 학생들이 화투나 트럼프놀이 하는 것이 유행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몇 번 목격하고 타이른 적이 있다. 낚시에 미치고 바둑에 미치고 공차기와 공던지기에 미치는 젊은이들이 나날이 늘어간다. 일부에서는 사주하기도 한다. 20세기의 미신에는「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있다. 운동 경기와 서양장기는 미소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런 말을 지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치한 이야기다. 지난번 올림픽에서 동독이 엄청나게 많은 메달을 땄다고 해서 서독보다 잘 사는 나라이고 국력이 더 세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스웨덴이 항가리나 체코보다 메달이 적다고 국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분업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분업주의와 상업주의의 모순을 꼭두각시 노름을 하는 직업적인 기사와 운동선수에게서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등산이건 낚시이건 운동이건 간에 유희는 삶이 일차적인 것이 못 된다. 더군다나 유희가 사고의 포기나 현실 도피가 될 때 그 민족과 그 문화는 멸망한다. 나는 현대 문화의 몰락의 원인을 목적의의의 상실, 사고의 포기에 있다고 본다. 어린 아이들이 노는 데 그만 정신이 팔려 공부를 안 하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꾸짖고 타일러야 한다.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얼 빠진 사람이 있다면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뭣에 미쳤건 미친 것은 미친 것이요 정상적인 사람이 할 것이 못 된다. 하물며 노는 데 미친 사람을 못 본 척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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