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가톨릭시보에서 어느 사형수의 참회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명을 경각에 두고 동료 죄수들을 위해 희생과 선행으로 많은 감명을 주었다 한다. 무엇보다 촌각이 황금 같은 운명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그의 신앙심을 높이 사고 싶다.
죽음 앞에서 영혼이 죄악에 물들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한 까닭이 아닐까?
나는 오랜 기간 폐결핵으로 요양하고 있지만 생명을 위해 육신에 충실하면서도, 생명의 근원인 영혼에 불충실하는 점에 대하여 이 분 앞에서 심히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세가 태어나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와 다를 바 없이 일정한 시효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이 사형수와 같은 참된 신앙에 일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우리의 생명은 사형수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더 길 것이라는 것도 짧을 것이라는 것도 보장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돌이켜 잡다한 인생살이를 묵상해 보면 아침 이슬과도 같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좀처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 산다는 것에 쫓기다 보면 자연히 나를 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잊고 산다는 것처럼 지극히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보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가 태산 같다. 먹고 마시는 것을 충족하다 보면 이제는 좀 더 호강스런 탐욕이 앞선다.
멋진 야회복 자가용 호화주택 댄스와 고급양주가 우리들 자신을 잊게 하고 타락과 탐욕은 죄를 낳고 시기와 미움과 불목의 씨앗은 암흑과 같은 불안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 것이다.
여름 한 철의 향락에 젖어 풍류로 세월을 보내다 처량한 처지로 전락한 베짱이의 이야기와 다른 바가 무엇인가? 우리의 신앙생활도 베짱인가. 당할 겨울을 염려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유익하랴.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최후의 만찬을 탐욕의 제물로 더럽힌 유다의 불행한 역사를 남기지 말고 스스로 사형수와도 같은 입장에 서서 생명이 촌각에 달렸다는 바른 묵상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와 더불어 모든 신앙인들의 마음 속에서 싹 트길 빈다.
사형수가 감수해야 할 베짱이의 그 겨울을 가슴 깊이 인식한다면 존귀한 생명의 순간 순간을 탐욕의 죄악에다 바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앙은 위대하고 장엄한 신의 섭리 안에서 사형수의 잔명보다 못한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을 혐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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