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시기가 시작됨으로써 성탄절과 연말의 분위기가 이미 조성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매년 이때가 되면 일반 사회도 그렇지만 특히 교회는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갖가지 움직임이 싹 트기 마련이다. 이것은 명절의 축하할 때를 맞이할 때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다 같이 축하의 기쁨을 나눌 수 없음을 가엾게 여기는 동정심과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인간애에서 발생하는 인류 공통의 사랑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떠한 불의의 천재지변 등 사고로 인하여 역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선행으로서 누구를 막론하고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웃 사랑을 특별한 생활신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불우 이웃을 돕는 것은 하나의 의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즉 크리스찬은 불우한 사람들을 돕거나 안 돕거나의 선택이 아니고 반드시 도와야 할 규범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와야 할 것을 보고 또 도울 만한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돕지 않을 때에는 그것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잘못으로 판단받을 수밖에 없다.
마태오복음 25장의 말씀대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즉 목 마르고 주리고 병들고 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는 자들은 최후의 심판에서 천국에의 문을 거절 당할 뿐이라고 경고하신 것을 보더라도 자명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한 자와 병고에 고생하는 자와 권력에 억눌린 자 등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쳐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솔선 실천의 모범을 따라 또 그 새로운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사도시대의 초대 교회가 이웃 사랑의 증거를 통해서 점차로 교회가 확장되어온 것을 보더라도 이웃 사랑은 교회의 표지이고 또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교회가 하느님만을 믿고 사랑하는 데 그치고 이웃을 도우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위선자이며 거짓말쟁이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이웃 사랑이 어찌하여 성탄 설날 부활 추석 등 명절 시기 때만 집중되고 여타 시기에는 등한히 해도 좋다는 것이 될 것인가?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불우이웃돕기운동이 강조되고 또 어느 정도 실천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매우 흐뭇한 일이기는 하나 그것이 전기와 같은 어떤 시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마치 가뭄에 소나기처럼 어떤 불우집단, 예컨대 교도소 양로원 고아원 등에 일시에 비슷한 선물의 홍수를 맞은것 같이 되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탄이나 부활 등의 시기만을 불우 돕기의 기회로 삼고 상시적인 것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집중적이고 일시적은 충족감은 만족시킬런지 몰라도 도움을 받는 측으로 볼 때는 정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또 꼭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될 것이다. 흔히는 도와주는 측이 덮어놓고 도와주는 데만 마음을 쓰고 만족감을 느끼는 나머지 진실로 도움을 받는 상대방의 시기와 장소와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결국 이것은 교회가 불우한 이웃을 돕는 방법론에 있어서 비조직적이고 비상시적인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정신이 비록 좋아도 그 실천 방법이 적당치 못하면 그 효과는 매우 적은 법이다. 오늘날까지의 교회가 베풀어주는 모든 자선사업에서도 시행 방법에 있어서 사회학적, 경영학적 방법의 부족으로 인해서 실적이 감소된 것과 같이 불우 이웃에 대한 사랑의 도움에 있어서도 좀 더 현실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정확히 하고 필요성의 완급과 대소를 가리고 시기와 장소에 알맞도록 체계적, 계획적으로 실천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다시 말해서 연례적 행사로서, 일시적 발상으로서가 아니고 상시적 계획으로 구호금품을 모우고 적립하여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유비무환의 차비를 하고 또 이것을 실시할 때에도 각기 본당별ㆍ단체별보다는 교구별 또는 전국 교회로서 통합되고 균형 있는 도움이 되도록 원호기구의 조직화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본란에서 수차 논급한 바가 있었지만 일례를 든다면 현재 구성되어 있는「인성회」같은 데서 전 교구ㆍ전 본당별로 계열 조직을 통해 교회의 원호사업이 보다 체계가 있고 항구성이 있고 기동성 있게 실천되었으면 하는 염원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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