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한 해도 또 저물어 간다. 해마다 세모가 되면 사람들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지난 연초에 지녀봤던 희망과 포부는 무엇이었으며 그 뒤 실제로 있었던 일은 무엇이며 성취한 일은 무엇이고 실패한 일은 무엇이었던가 통털어서 반성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반성이 감상이나 한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일들이 무엇이며 그것들이 어떻게 결말 지워졌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우리」라는 개념이다.
『그리스도 신앙이란 단자처럼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개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개인이란 없고, 인간이 오히려 전체 안으로 즉 인류 안으로, 력사 안으로, 우주 안으로 이끌려 들어감으로써만 자기 자신이 된다는 인식에서 그리스도 신앙은 비롯된다』고 요셉 라싱거가 말하였다. 우리는 신앙을 개인적인 명상이나 개인적인 피난처로만 생각하던 시대로부터 떠밀려 멀리 앞으로 나와 있다. 이 오늘의 장황에서「신앙」은 우리 모두와 더불어 형성되어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빈번히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일치」라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연대감 위에선 신앙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이 일치의 필요성 때문에 한 나라 안에도 주교회의가 있다.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74년, 75년 이래「어린이전교회」「인성회(자선개발교육 전문기구)」「정의평화위원회」등을 산하 직속기구로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76년이 저물어가는 오늘에 이르기가지 위 기구들이 전국 교구에 걸쳐 조직을 완료한 예는 하나도 없으며 따라서 그 사업이 부진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정의평화위원회」는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기구의 기본 성격에 따라「시국기도회」를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국기도회를 이른바「일치된 자세」로 개최해 나간다는 데에는 계속하여 커다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1960년대 이후부터 보더라도「어머니와 교사」「지상의 평화」「제2차 바티깐 공의회 문헌」「민족들의 발전 촉진」등 현대 세계를 실천적으로 구원할「원리적 대안」을 공식으로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리들이 지역국가의 주교회의를 거쳐 각 교구에 내려가면 해석하는 방향이 각기 다르게 되고 실천 면에서「일치」를 이루기는 매우 힘든 실정을 드러내게 된다.
교구간의「불일치」는 시국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조그만 한국 영토 안에서이지만 재정 형편에 있어서도 교구 간에 너무 큰 빈부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일치와 형제애를 정면으로 거슬리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돌프스 신부가 쓴「신의 무덤」(부제ㆍ교회에 미래가 있는가?) 라는 책이 요즈음 한국에도 소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교회 당국의 검열을 거쳐서 출판되었다는 이 책은 실로 교회의 존립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충격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내용에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어 있는 것이「교회의 속지주의」이다. 속인적이라기보다 속지적인 성격을 띠는 교구의 기능은 현행 교회법에 의해 보장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제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비판적 견해가 교회 내부로부터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뜻하는 바를 오늘의 신앙인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교구에 맞먹는 중세 봉건영지들의 개방은 진대 시민 계층의 성장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민 계층이 교회 내에서는 바로 평신도이다. 오늘날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평신도의 입장이 얼마나 위축되어 있는지를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또한 한국 교회에 미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속의 역사는 발전하는데 교회의 역사는 제 자리 걸음을 하여 왔다. 한국 교회 각 교구청은 평신도 인재들을 활용하는 일에 너무 소극적이다. 성직자들은 사회와의 실질적 유대관계를 갖지 않고 각기 명상의 밀실을 지키고 있다. 그러다가 교황청으로부터 무슨 행사의 방침이 시달되면 갑자기 당황하여 졸속으로 형식적인 행사를 치루고 만다.
이미 교회기관에 배속된 평신자들은 사회 직장보다 훨씬 낮은 봉급 때문에 시민적 생활이 위축되고, 교회에 불만을 갖게 되며, 결국에는 능력이 부족한 평신자들만이 교회 기관에 남아 있게 된다.
이래 가지고서는 교회가 발전하기가 힘들며 교회가 사회 속으로 들어가 모범을 보일 힘이 없게 된다.
우리 각자의 신앙을 견지하기 위하여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되는 몇 가지 구체적 현실을 반성해 보면 우리 자신의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아픔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아서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십자가이며 신앙의 기본 자세이다.
이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으면 우리의 교회와 신앙생활에 발전적 역사의 일보가 크게 내어디뎌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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