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인고를 겪고 난 대자연은 이제 결실의 가을로 접어들었다. 저 넓은 들과 산에는 저마다 열매를 맺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보람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교회는 이러한 결실의 계절을 「복자성월」로 정하고 우리들에게도 밀ㄷ음의 열매를 맺도록 권장한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 각자가 자신의 신앙자세를 살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믿음의 열매는 결코 안이한 신앙생활에서는 맺어지지가 않는다. 여름의 그 무더운 시련을 겪고 난 연후에야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믿음에서도 시련이 따라야 그 열매는 더욱 충실한 법이다.
『내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도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보 1ㆍ3~4)
『아들아, 야훼께서 견책하시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의 꾸지람을 달게 받으라. 야훼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꾸짖으시고, 귀여운 아들에게 매를 드시는 아버지처럼 하신다』(잠언 3ㆍ11~12)
히브리서에서는 그 말씀을 인용한 후에『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견책하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로 여기고 하시는 것이니 잘 참아내십시오.
아버지로서 자기 아들을 견책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12ㆍ7).
이런 견지에서 생각할 때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특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신유교난에서부터 시작하여 기해 병오 내인 등의 대교난을 겪고 난 우리 한국 교회는 말할 수 없는 박해를 이겨냄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닦은 것이다. 무수한 순교자의 피는 우리 교회를 어떠한 폭풍우에도 끄떡도 하지 않는 반석 위에 올려놓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서 순교자의 피에 보답하는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자.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 옛날의 잔인한 박해와는 달리 달콤한 독을 가지고 유혹하는 형상에 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은 차라리 박해보다도 더 무서운 해독을 우리 교회에 끼친다.
그것은 자칫하면 교회의 분열에까지는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걸림돌」이 될 수는 있는 것이다.
특히 사이비 신자들의 준 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가장 열심한 척하면서 그리고 가장 교회를 사랑하는 척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우리 교회를 더욱더 어려운 곳으로 몰고 간다. 이러한 자들이 많이 생길 때 하느님께서는 다시 채찍을 드실 것이다.
박해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에서 없을 수 없는 사랑의 채찍임을 절감케 하는 면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교부는 교회의 박해를「충실한 열매를 가려내는 키」라고까지 말했다. 너무나도 평온할 때는 진가를 가려내기가 힘든다. 아니 혼동까지도 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일단 박해의 회오리바람이 불면 모든 가면은 벗겨지고 쭉정이는 날아가 버리고는 그 알맹이만 남게 된다.
과연 오늘 우리 교회의 신자가 1백만 명이 넘는다지만(그것은 결코 많은 숫자라 할 수도 없지만) 그 중에서 참으로 박해의 회오리바람이 불어도 조금도 동요치 않고 치명의 영광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 사람의 믿음의 깊이는 표면상에 나타난 것을 가지고는 헤아릴 수가 없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수 있을 뿐이다. 겉으로는 아주 열심한 착한사람이 너무나도 쉽게 교회를 배반하고 주님을 팔아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순교사의 토막들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 반면에 표면상으로는 그다지 열심한 것 같지도 않았으며 교회 내에서는 그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했던 분들이 교회에 대한 충성심과 주님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해서 온갖 박해를 물리치고 당당히 순교자의 반열에 끼어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누렇게 빛나는 것이 반드시 황금은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도 참으로 무명의 순교자들이 기둥이 되어 떠받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하자.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있어서 박해는 교회를 정화하여 순수하게 만드는 데 피치 못할 계획의 일부임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교회가 그와 같은 순교자적인 의연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이 간교한 세파나 각종 문화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사람만이 주님 앞에 의로운 자로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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