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부활절을 기해 출판된 대한성서공회 발행 공동 번역 성서를 요독(要讀)하고 난 후 양교 공동 번역 성서 출판을 위해 오랜 세월 애써 오신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는 구약성서의 완역이 처음인 만큼 이런 대업을 완수한 성서 공회 측에 더욱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그러나 아직 통독은 못한 대로 성서공회 측에 보다 우리 교회 당국에 이 성서에 관련된 몇 가지 건의와 비판을 전하지 않을 수 없어 붓을 잡아본다.
필자가 접한 책은「가톨릭용」공동 번역 성서이다. 이 성서는 분명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 텐데 아무리 보아도 가톨릭용이라고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성서는 1597페이지까지만「구약성서」라 해놓고、소위 외경(外經)으로 알려진 구약정경(正經) 토비트 유딧 에스델의 일부、지혜서ㆍ집회서 바록 다니엘의 일부 마카베오 상ㆍ하 제9권은「공동 번역 제2경전」이라 하여 구약과 신약 사이에 따로 수록되어 있어(페이지도 따로 계산되어 있다) 구약도 신약도 아닌 또 다른 성서처럼 편집됨으로써 성서라면 신구약뿐이라고 알고 있는 우리 신자들을 당황하게, 또는 엉뚱한 부록이 든 것처럼 느끼도록 한다.
공동 편찬의 어려움과 출산을 위한 정책적인 타협을 교려하여 양보를 했다 하더라도「에스델」과「다니엘」만은 한데 뭉쳐질 수 있도록 성서공회 측이 아니라 우리 교회 측에서 힘썼어야 하지 않을까? 전례 중에 낭독할 때에는 신자들로 하여금 여기저기 뒤적여가면서 구약성서를 읽게 할 작정인가? 소위「제2경전」이 정경인지 아닌지의 토론은 호교론자(護敎論者)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적어도「가톨릭 신자용」성서에서 그런 뚜렷한 구별을 해놓을 필요가 있었는가 말이다.
물론 이러한 조처는 프로테스탄트 성경과의 최대한의 일치를 꾀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교회 당국이 참으로 저네들의 비난처럼 성경을 홀시(忽視)하지 않는다면 우리 신자용 성서만이라도 올바르게 체재를 갖춰놓을 만큼의 절충과 투자를 해야지 않겠는가?
소위 제2 경전이 역사성을 들고 나와 이런 체재를 변명하러 둘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때 그 정경성(正經性)을 의심받았다는 사실 정도는 이 성서 도처에 있는 각주(脚注ㆍㆍ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필요없는 것이 많다.)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에스델」서 755페이지에서 765페이지 (에스델 1장~10장)까지는 얼마나 정제(整齊)된 장절(章節)이냐? 그에 반해 제2 경전 54페이지에서 62페이지까지의 11장ㆍ12장ㆍ13장ㆍ15장ㆍ16장ㆍ9장ㆍ10장ㆍ11장. 이것은 성경학자나 비신자들의 참고서지 어떻게 가톨릭 신자들이 읽을 성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구약성서 목록에서「에스델」을 빼버리는 게 신자들을 미혹(迷惑)에서 건지는 일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고유명사 표기. 이 문제점을 지적 않을 수 없다. 가장 거슬리는 것이「출애굽기」이다. 이 표기는 머리말에 나오는 3가지 표기 원칙(①신구교가 사용하는 명사가 같은 것은 그대로 ②그렇지 않은 것은 사전이나 교과서대로 ③그렇지 않은 원어 발음대로)의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 표기는 한국 개신교에서만 쓰는 국적 불명의 표기이다.「출애급기」(出埃及記)로 개정되어야 한다. 또 권 말에 있는 성서 지도는 지명 표기가 성서 본문의 표기와 달리 돼있으므로 (대부분 한국 개신교 측의 관습적 표기일 뿐이다.) 가톨릭 신자나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이 점은 대한성서공회 측에 개정을 촉구하면서 아래에 그 몇 예를 들어둔다.(※묶음표 속이 올바른 표기)
▲가버나움(가파르나움)▲갈릴리(게쎄마니)▲구라파(유럽)▲구레네(키레네)▲구브로(키프로스)▲긴네렛(겐네사렛)▲다메섹(다마스커스)▲드라고닛(트라코니티스)▲헬라(그리이스)….
요컨대 공동 번역 성서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많은 불편성과 미혹을 안겨다주고 있다. 그리고 그 불편성과 미혹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고쳐질 수 있는 것이다. 6월 20일자로 가톨릭용 성서가 벌써 3판이나 나왔다니 굉장한 보급률이 아닐 수 없다. 이왕 오랜 노력 끝에 나온 성서이니 하루 빨리 이런「옥의 티」를 검토ㆍ수정하여 개정판을 내주기를 우리 교회 당국과 대한성서공회에 촉구하는 바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이 어렵고도 성스러운 번역사업을 마쳐주신 여러분들께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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