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키올! 뜻 심은 지 어언 10년. 이제 주의 영광스런 사제단의 일원으로 서품됨을 진심으로 경하해마지 않는다. 폭서와 비바람 속에서 알알이 영근 밤송이처럼 네 나름의 갈등과 번뇌도 새 의미로 익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우야, 명심하라! 항상 풋밤송이인 것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아직 시작이요 갈 길은 멀고도 먼 길. 항상 주의 굳센 팔이 따르시기를 빌어주마.
네가 평범히 내게는 제수를 얻게 하고, 네게는 한 평생 반려자를 얻는 결혼식이라면 너를 축하함을 달리 하였으리라. 그러나 어쩜 네 길은 외톨박이, 네 새댁(성교회)은 수줍어서 참 말을 할 줄 모르리라.
그렇다고 눈치 없이 태평하게 살지는 말라. 원래 아낙네는 속정을 알아주길 바라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면 토라져 영영 입을 다물어버릴 터니 말이다.
너 어릴 때 손길을 잡아주던 형은 장성한 네게 이 말을 일러줌은 노파심 때문만도 아니다.
■들을 줄 아는 신랑(사제)이 되라.
네 새댁은 너를 끔식이나 존경하여 행여 사랑이 덜할세라 정직하게 말할 것을 망설이다 그만둔다. 말하자면 야당 없는 속삭임뿐이다. 그래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불만의 소리에 더 잘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볼 줄 아는 신랑이 되라
네 새댁이 그런 대로 자리에 눕지 않고 온 종일 서성댄다고 방심하지 말라. 네 새댁은 지병인 해소병으로 밤잠을 잘 못 자고 그의 손발은 벗겨지고 멍들어 있다. 인정머리 없는 신랑이라 투정을 받기 전에 네 새댁의 상처를 살필 줄 아는 눈썰미를 가지라. 여인은 작은 호의에도 감동하는 법이니.
■말할 줄 아는 신랑이 되라
네 말이 이치에 맞는다 하더라도 네 새댁이 기쁘게 알아듣지 못한다면 네 말이 무슨 소용이랴. 네 새댁이 흔한 연속극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린다 하여 면박하지 마라. 계명(啓明)된 새댁을 원한다면 영화 같은 웅변을 토해보라
■땀 흘릴 줄 아는 신랑이 되라
창의와 박력으로 새 집을 짓기 위해 일, 일밖에 모르는 실속 있는 신랑이 되라. 멍청히 앉아있는 동안 네 집엔 거미줄이 끼고 네 곡간에 바구미가 번식하리라. 일 속에서만 삶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나눌 줄 아는 신랑이 되라
외톨박이가 아닌 길은 나누는 길뿐. 네 새댁이 아둔하여 네게 걸맞지 않게 여겨지더라도 네 생각을 기탄없이 털어 놓아라. 비록 네 의도와 달라져서 골머리가 아프더라도 마음의 문을 닫지 마라. 그러는 동안에 네 새댁은 현명해질 것이며 네 도량에 감복하리라.
사제가 된다는 사실보다 사제로서 훌륭히 사는 것이 더 어려운 길이라 여겨지기에 네 서품의 축하 속에 이런 것들을 일러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