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농가에 나귀와 수탉이 같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귀와 수탉이 뜰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무서운 사자가 울타리를 뛰어 넘어들어왔다. 갑작스런 침범자에 놀란 나귀는 아이쿠 죽었구나 하고 눈을 딱 감고 발발 떨며 죽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수탉은 사자를 보자 무서운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꼬꼬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를 듣고 사자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소리라 깜짝 놀라 멈칫 서더니 뒤로 슬슬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자에게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몸서리 치게 지겨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나귀는 동물의 왕자라는 수탉 우는 소리에 도망치는 것을 보고 저것쯤이야 하고 뒤따라가 혼을 내줄 양으로 사자를 뒤쫓았다.
사자는 한참 달아나다가 뒤를 돌아보니 닭은 온데간데 없고 나귀만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뒤돌아서서 나귀에게 와락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나귀는 엉뚱하게 교만한 마음을 먹었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교만은 패망의 시초이며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란 말이 있다. 성경에도『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했다. 사실 거만한 사람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없는 법이다. 거만은 항상 파멸이 한 걸음 앞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은 이미 승부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사람의 성품 중에 가장 뿌리 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일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겸손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데 이것도 교만의 하나다. 인간이 겸손을 의식하는 한 아직 그 사람 안에는 교만의 뿌리가 생생히 살아있다는 증거다.
지체 높은 많은 신부들을 본다. 그들은 언제나 겸손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단 한마디의 말도 귀에 거슬리면 얼굴이 창백해지리 만큼 분노를 느낀다. 다음 나오는 말은 전혀 겸손이란 모르는 사람이 되받는다. 같은 신부들의 말이지만 때로 과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오랜만에 만난 신자들을 보고「야 자」하고 너는 어떻고 그래라 저래라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다 신부보다 연령적으로 위라는 것을 알 때 옆에 있던 사람마저 얼굴이 화끈거린다.
심지어는 정성을 다해 신자가 자진해서 바치는 선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런 것 쓸 데 없다는 식으로 외면한단다. 그런 신부가 과연 목자라 할 수 있을까. 신자들은 착하다. 특히 한국의 신자들은 착하고 신부를 하느님 모시듯 한다. 그래서 신부는 으레 반말투로 신자들한테 대해도 고맙기만 하다. 신부로서 나한테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려 한다. 그렇다고 신자들에게 교만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말이 있다.
신부 회합 때 많은 신부들이 위엄을 떨치고「내로라」하고 앉은 가운데 겸손되이 앉은 한 사람에게『너는 누구냐』고 물었더니『나요 나 그리스도요』하더란다.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죽기까지 순명하고 종의 형태로까지 탈을 바꾸어가면서까지 겸손했던 그리스도、인류 구원의 대사업을 이룩한 그리스도 우리는 그의 제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니냐. 높은 지위에 있다고 교만하지 말아야지. 안하무인 격으로 자기에게 속한 불쌍한 사람들 신부와 신자라는 사이기 때문에 한 번 항의도 못해보는 슬픈 사람들 그들 역시 그리스도의 형제요 우리에게 맡긴 양들이 아니겠는가. 나중에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고함 지르는 것을 장기로 삼다가 그리스도한테서 같은 척도로 나무람을 받지 않도록 다같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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