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금년으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1968년 7월 대전에서 전국 각 교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고고의 성을 울린 평협은 그동안 초창기의 온갖 어려움을 오직 인내와 희생 그리고 불타는 사명감으로 극복、오늘의 발전을 보게 된 것이다.
평협 발전을 위해 그간 알게 모르게 헌신해온 관계 인사 주위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 아울러 유아기를 벗어나 힘찬 발전을 다짐하고 나선 평협의 발족 10주년에 즈음하여 마음으로부터의 축하를 보내는 바이다.
혹자는 오늘의 교회를 평해 평신도의 시대라고도 한다. 이는 제2차「바티깐」공의회 전까지만 해도 거의 잊혀져 있던 평신도들의 역할이 오늘날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라고도 하겠다. 확실히 평신도들의 사명이 오늘날처럼 중대한 것으로 느껴진 때는 일찍이 없었다.
물질호위 풍조의 만연으로 인한 각종 병폐로 방향감각마저 잃고 방황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최전선 전투 요원으로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평신도이 사명은 실로 막중하다고 하겠다. 매일 같이 세속에 살면서 세속 일에 파묻혀 살아가는 평신도야말로 그리스도교적 정신에 불타며 누룩 같이 되어 세속 안에서 사도직을 수행토록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공의회 교부들은 지적하고 있다 (평신 2).
특히 한국 교회는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일찍 평협 조직에 착수、벌써 10년이란 연수을 쌓아왔음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지난 10년간 평협은 신자들의 이해 부족과 재정 빈곤 등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과 활동을 해왔다.
그간 순교 선열들의 시성시복운동을 제창、교회 당국과 1백만 신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이를 위한 전담기구가 발족되어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 있음은 평협의 커다란 업적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싶다.
평협은 또 평신도의 의식 계발을 위해 평신도 교육 교재까지 발간하여 신자 재교육에 힘써 전국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협은 교회 내 정기 간행물 보급 운동에도 앞장서왔다. 평신도의 의식 계발을 위해 시도된 이 사업은 주로 경향잡지 가톨릭시보 구독을 조직적으로 권장、전국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밖에 가난한 농어촌 본당ㆍ공소돕기운동을 평협이 그동안 이룩해 놓은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평협의 활동이 있었음으로 해서 그리스도 왕국 건설에 크게 도움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마가편식 고언을 한다면 유아기를 벗어나 10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로서 평협은 이제 종전과는 다른 각오와 계획으로 임할 태세를 갖추어 달라는 것이다.
항간에는 아직도 평협이 제 진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평협이 지금까지 추진해온 활동이 평신도로서의 특성에 맞는 그리고 반드시 평신도들이 앞장서야만 될 일들이었는지를 반성해 보자는 주장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평신도는 사회 속에 살면서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될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평협 활동도 이에 맞겠금 하여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 교화를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야 할 줄 안다. 지금까지 평협이 이러한 방면의 활동을 소홀히 해왔음은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금년도 정기총회에서 대사회 선교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이 거론되고 또 평협의 새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5인 소위원회가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평협 역사 10년에 아직도 재정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평신도 전체의 수치라고 할 것이다. 평신도주일 헌금 일부는 주된 재원인 현재의 사정으로는 알찬 활동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이다. 1백만 신자를 자랑하는 한국 교회에서 평협의 경제적 자립 문제야말로 전 신자가 깊이 각성하고 또 교회 당국이 특히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또한 평협은 하향식 조직의 병폐인 하부조직의 미비란 고민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부 교구가 하부 조직을 외형적으로나마 완비한 곳도 없지 않으나 아직도 완전한 단계에까지는 요원한 형편이다. 교구 단위 조직마저 갖추지 못한 교구가 있는 현 시점에서 이는 무리한 요구인지 모르나 평협이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이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끝으로 평신도 가운데는 아직도 상당수가 교회 내의 어떠한 활동이든지 교회의 정당한 권위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공동선에 유익하도록 사도직의 실천을 질서 지어주며 교의와 질서가 보존되도록 배려하는 일은 교회의 권위이 일차적 임무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활동은 만약 그것이 교회의 정당한 권위의 동의를 받지 않고서는 가톨릭 운동이란 명칭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교회 액션은 다른 사회 활동과 다른 것이다.
이 점에 대한 평신도들의 깊은 이해가 있고 또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교회 사목자들의 보다 깊은 관심과 열의만 있다면 평신도 활동은 보다 알찬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고 또 이것이 새로운 교회상 정립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평협의 무궁한 발전을 다시 한 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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