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을 맞이하는 순간 순간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연속되는 현재와 미래의 교차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동반하고 있다.
지금 교차하는 순간 역시 새로운 교차의 순간과 교차되고 있다. 우리는 처음으로 송구영신의 때를 맞이하지는 않는다.
예년에도 마찬가지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한편 일년을 살았지만 그많은 날들이 오늘 이외는 현실이 아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어제는 영원으로 사라졌다. 오늘을 살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없어질 이순간 전후의 시간들은 아직 없기도 하고 벌써 없어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늘의 대부분도 비현실이며 금년 한 해도 허무한 시일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력을 갖추었기에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기다린다. 어제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계획한다.
과거의 실수는 반성하고 앞날의 개선을 연구한다. 푸른하늘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기다리는 마음도 아름답고 그곳을 향하여 달리는 발걸음도 아름답다. 그날이 가능하다고 보는 눈동자도 희망차다.
지난날이 오늘의 과거라면 오늘은 미래의 과거가 될것이 아닌가? 과거가 오늘의 방법이었듯이 오늘은 미래의 방법이 아닌가? 구세대도 젊었을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선배를 칭찬 아니면 비판했을 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도 선배를 비판한다. 이들에 대한 불만이 있다.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다. 이기주의를 반박한다. 부정부패를 규탄한다. 순수한 젊은이의 외침은 희망차다. 광명이 없는데 어떻게 암흑을 깨닫겠는가? 정의가 없는데 어떻게 불의를 지적했는가? 사랑이 없으면서 어떻게 증오를 안타까와 하겠는가?
그러므로 희망은 젊음의 보존에서 비추어진다. 새해를 다시는 지나쳐서는 안될것이다.
불의와 정의의 교차는 있어도 정의와 불의의 교차나 부패와 부패의 교차는 있을수 없다. 선배를 비판하는 후배가 비판을 받는 선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간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젊음을 아껴야 한다. 사랑에 의해서 오늘을 보존하고 젊음을 지탱할 수 있다. 불의에 물드는 새해를 맞이할 수는 없다. 사랑이 있으면 오늘의 젊음을 양보하지 못할것이다.
사랑에 의해서 젊음이 보존될때 정의는 구현될 것이다. 세대차를 놓고 말하는 젊은이는 참다운 젊은이가 아님을 역사는 증명한다.
영원한 사랑이신 주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개인주의에 물들지 않는 희망찬 젊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하여 영속할것이다.
▲지금까지는 서영석 교수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변갑선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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