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저녁미사 때 보좌신부님께서 본당 신부님이 신학교로 가신다고 한다. 무슨 말씀인가 하고 내 귀를 의심하며 미사가 끝났다. 기도가 끝나고 사회자로부터 다시 한 번 본당 신부님의 전출 얘기를 듣고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도 충격적인 말에 고상을 우러러보며 아무 말 없이 한참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본당에 오신 지 2년 4개월. 오시자마자 성당 증축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 지난 5월에야 비로소 우리 하느님의 성전을 그 초라한 모습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대성전으로 세우셨다.
그동안의 고초 이루다 말할 수 없고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신부님의 노고는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었으며 작업복에 손수 망치를 들고 교우들을격려해가면서. 이제 그 멋진 준공식이 끝나고 비로소 한숨 돌리며 환한 웃음으로 미사를 집전한 지 불과 4개월여.
그 여운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딴 데로 가시다니 너무도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나뿐 아니라 모든 교우들이 다 똑같은 한마음이었다. 나는 그간 병을 앓다 병자성사까지 받고 병석에 누워있는 몸이었었다.
지난 4월 신부님께서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나는 병석에서 듣고『신부님 쉬셔야 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장기간의 요양이 필요합니다.』나는 진정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지난날의 고달픈 나의 직장생활을 미루어볼 때 의사의 쉬어야 한다는 통고를 받고도 어쩔 수가 없어 질질 끌려다니면서 또 1년을 보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몇 해를 쉬어봤으나 이미 때는 늦어 온갖 약을 다 써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매일 비틀거리는 몸이 되더니 급기야는 병자성사까지 받게 되는 신세가 됐다. 우리 천주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불쌍히 여기셨던지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던 거다.
이 같은 내 경험이 있길래 나는 신부님이 과로로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도 아팠고 과로의 축적이 얼마나 무서운 병을 초래하는 건지 스스로 느낀 나는 신부님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제 겨우 좀 편하실려 하는데 딴 데로 가시다니 거기에서 또 어떤 고된 일을 맡으실려나 싶어 천주님께 빌어마지 않는다.
『주여 우리 신부님 어디로 보내시든지 너무 막중한 일일랑 맡기지 마옵소서.』
의지는 무쇠처럼 강하나 마음만은 여자처럼 온순하시고 인자하나 한량없는그 어지신 이기명 신부님! 그 이 프란치스꼬 신부님을 이제는 뵈울 수가 없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감당할 수 없이 쏟아졌고 안녕히 가시라는 말씀 한마디 못 나누고 끝내 헤어지고 말았다.
신부님은 우리 봉천동을 떠났으나 신부님의 업적만은 유구만년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 흡족하다.
부디 건강에 유의하시고 하시는 일에 강복하시길 두 손 모아 천주님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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