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택시를 타려고 택시정류장에서 줄을 서 있었다. 내 앞에 한사람이 남아 있었는데 남자 셋이서 줄을 서지 않고 옆으로 와서 서 있는 것이었다.
내 앞사람이 택시를 타고 간 후 다음 택시가 오자 그들은 서슴없이 그 택시를 잡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제 차례인데요.』하니까 자기들 차례라는 것이었다. 엄연히 옆에서 슬쩍 들어와 놓고는 무조건 자기들이 탈 차례라는 것이었다. 싸우자니 그렇고 내버려 두자니 그들의 행위가 괘씸해선 나는 「내 차례」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택시를 탄 일이 있었다.
줄을 서서 있는 모든 이가 보았고 자신들에게도 양심을 있을 텐데도, 「내 차례」라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엔 너무나 많다. 그 같은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사회 우리시대는 믿음이 없는 각박한 후진 사회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5년 전 미국에 처음 들렀을 때 인상 깊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고속도로에 대단히 많은 차들이 밀렸는데도 운전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 차선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경우는 많은 차량이 밀리다 보면 영낙없이 차선은 무시되고 3차선은 네 줄로 다섯줄로 늘어나는가하면 어디 틈이라도 나면 두 대가 동시에 그곳을 차지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보통이다.
또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다가 느낀 것인데 내가 탄차가 고속도로로 들어가려는데 차 한대가 고장이 났는지 서 있는 것이었다. 이 길은 차 한 대 밖에 갈 수 없는 길이어서 우리가 탄차는 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빵빵」하고 싶은 충동을 받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부님, 이곳에서는 절대로 크락숀을 쓰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내려가서 도와 줄 일이 없느냐 묻는 것입니다』하면서 운전하던 교포 신자는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뒤에 또 한대의 차가 와서 기다리고 그 차는 얌전히 앞차가 비켜 줄때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크락숀을 울리거나 옆으로 빼어달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바로 이 작은 질서의식을 통해 나는 그들이 경제적인 풍요보다도 정신적인 면에서 선진 국민들이구나 하는 것을 아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주위에는 불신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경제적으로 생활이 나아지는 과정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고 또 잃어버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상실은 양심의 상실이다. 이 양심의 상실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한다고 한다. 또한 지금까지 법이 악용되었던 모든 경우를 생각해서 부칙을 많이 만든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운영하는 운영권자들이 양심을 떠나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세속의 자녀가 빛의 자녀보다 약삭빠르다(루까 16, 8)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사회는「그 모양 그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도의 성자 간디에게 어느 외국인 선교사가 지금 인도의 최대 과제는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Character bui lding」곧「인격건설」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터전이 가장 필요하다.
많은 불행과 헤아릴 수 없는 죄들은 대부분이 믿음이 없는데서 생겨나는 법이다.
요사이 젊은이들의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어른들이 믿음의사회를 만들어 내지 못 한데 원인이 있고 대학생들의 그 아까운데 모들도 믿음이 없는 정치와 사회질서에서 생겨나는 것일 것이다. 돈이면, 권력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그러한 생각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독, 그것이 바로 사회를 죽이는 결과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인 성장을 만들어 나가면서도 국민 모두가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믿음을 나눌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여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정치, 믿을 수 있는 보도체, 믿을 수 있는 경제구조, 믿을 수 있는 교육제도, 믿을 수 있는 종교인이 우리 사회에는 절실히 요구된다.
어느 한곳이라도 믿을 수 있는 곳이 있을 때 국민은 믿을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아 그곳으로 모이고 새로운 사회는 만들어져 나갈 것이다. 지금우리는 믿을 수 있는 곳, 믿을 수 있는 시대를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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