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부터 25일까지는 교회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주간으로 정해져있다. 교회일치 운동은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이 일치주간에 즈음하여 다시한번 일치 운동의 유래와 오늘의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교회일치 운동은 제2차「바티깐」공의회가 주요 목표로 한「교회 현대화」와「교회의 재일치」의 2대 목표의 하나로서 제창되어「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이 결정 공포되었을 뿐만아니라 그 일치 운동의 정신이 교회헌장을 비롯한 각 헌장 교령 선언 등에 전면적으로 반영되어 있는것을 보더라도 이 운동이 얼마나 공의회에서 신중하고 또 심각하게 다루어졌는가를 규지할 수 있다. 특히 일치 운동의 성서적 견해로서『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될 것입니다』(요한17ㆍ21)라는 그리스도의 선언과『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입니다』(에페소4ㆍ45)라는 사도 바오로의 해설을 주요 근간으로 삼는 것은 교령에서 밝힌바와 같다. 동시에 교령은 하나이어야 할 교회의 갈라진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한 깊은 통회의 성찰을 하고 다시금 일치운동을 일으켜야할 시대적 사명과 그 징표를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교령은 일치 운동의 실천과제로서 그리스도 신자들의 내적회심의 근본자세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도와 대화와 활동의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교회 일치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동시에 가능한한의 협력적 활동에 이르게 하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일치 운동의 정신과 실천 목표 사항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어느정도에까지 와있는가? 공의회 이후 10년을 경과한 오늘날까지 한마디로 말해서 아직도 계몽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일치 운동은 물론 갈라진 형제들의 교회들을 상대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로 우리 가톨릭교회의 측면에 관해서만 살펴보려고 한다. 한국교회안에 이미「교회일치 위원회」가 주교회의의 한 기구로서 설치되어 있고 또 이 기구는 해를 거듭하여 성공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등의 각 교파 교회들과 수차의 신학적 대화의 모임을 가진바 있다. 또각 교구별로도 일치주간, 성탄과 부활시기 등에 기도회와 친선의 집회 등도 곧잘 열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신도 측에서도 학생회 청년회 등의 합동연구와 활동같은 것도 종종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불과 10년 이전의 개신교 측이 가톨릭을 마리아 교회시 하거나 가톨릭 측이 개신교를 열교로 호칭하면서 그 구원을 의심하던 시절에 비하면 실로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오늘의 한국교회 일치 운동이 본 궤도에 올랐다고는 볼 수 없고 단지 계몽적 기초단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 가운데에도 흔히 다음과 같은 의견을 토로하는 것을 듣는다. 즉 그 하나는『개신교 측 자체가 일치보다는분열이 심한 이때에 우리가 어떻게 누구를 상대로 일치 운동을 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고 그 둘째는『우리 가톨릭 측 자체도 완전히 일치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어느 여가에 다른 교파와의 일치를 꾀할 수 있겠는가?』의 한탄의 소리이다. 이도 물론 일리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측이 다 내부일치를 기다린 후에 일치 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백년하청격으로서 일치 운동을 하지않겠다는 결과가 되고 말것이다.
오랜세기를 걸쳐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온 역사적 사실을 감안할 때에 일시에 큰효과를 거둔다는 것은 무리한 소망이다「시작이 반」이라는 격언과 같이 몇십, 백년을 내다보고 오늘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현대교회를 사는 우리 크리스찬들이 사명감을 느껴야 할것이다.
그리고 또 교회일치라는 개념은 획일과는 다르다. 교리나 전례나 제도 등에 있어서의 하나로 뭉치자는 획일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 사도 바오로의 해설과 같이 아버지도 하나 주님도 하나 세례도 하나 구원도 하나 성경도 하나 등의 대동성에 치중하고 전례 전통 성서해석 체제 등의 소이성에 대해서는 상호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논쟁적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오늘의 일치 운동을 가장 슬기롭게 하는 자세일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의 명언을 이 일치 운동에서 절실히 재음미해야겠다. 즉『필요한 일에 있어서 일치하고 불확실한 일에 있어서 자유를 존경하여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을 보존할 것이다』라는 절규이다.
끝으로 일치를 위한 기도ㆍ대화ㆍ협력활동은 근자에 와서 한국의 진정한 정의와 평화나 자유와 인권문제 등에 있어서 양측 교회가 거의 완전히 일치하는 태도로서 공동으로 기도하고 대화하고 활동하는 모습은 실로 우리 교회일치 운동에 커다란 계기를 주었고 또 앞날의 진로를 밝혀주는감이 없지않다. 진정 불고싶은대로 부시는 성령의 바람이 한국교회의 일치를 위해 더욱 세차고 풍부하게 불어주시기를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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