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전화벨이 요란히 울린다. 수화기를 재빨리 잡으니 교도소의 사형중 우리 가톨릭 신자 세 사람이 사형을 받았다면서 불쌍한 사람들이니 우리 교우들이 가서 연도나 드려주면 어떻겠느냐는 전화다.
아침밥을 먹고 이곳저곳 연락도 하고 여러가지 주선을 해가지고 범물동 묘지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20여 명의 교우들이 나와있었다. 버스 종점에 내려서 묘지로 가는 길이 눈이 아직 녹지 않아 질퍽질퍽하고 미끌미끌했으나 아무도 불평 한마디없이 걸었다. 뒤에서 트럭이 덜컹거리며 올라오는 소리에 돌아보니 차는 이미 우리앞을 지나 가는데 앞자리에는 신부님이 앉아계시고 뒤에 짐 싣는데는 하얀관이 세 개 놓여있어 이 차로구나 생각하며 따라갔다.
눈이 아직 덜녹은 풀밭에 분필로 이름을 적은 관이 세개 나란히 놓여있는데 한 관에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엎디어 통곡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중에 제일 효자였다는데 그런 사람이 어찌하여 벌 중에도 제일 큰 사형을 받았을까? 그 광경을 보고있던 한 교우는 성모님의 아픔을 묵상하겠다 하며 눈물을 흘렸다.
관은 하나씩 산으로 들것에 실려 올라갔고 세구의 시체는 나란히 흙으로 덮혔다.
신부님께서는 예절을 시작하시기 전에 그들 세 사람의 죽음 직전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주셨는데 그 중 한 사람의 이야기. 그의 눈을 빼어서 실명당한 사람에게 주되 돈 없고 가난하여 수술을 못받는 사람에게 주고 수술비에 보태쓰라고 돈 이천원까지 내놓고 자기 가진 돈 오천원중 삼천원은 불쌍한 이웃사람을 위해 미사를 드려주고 이천원은 수술비에 보태라고 하였다는 말을 듣고 우리들은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다른 한 사람은 대세자였지만 또 한 사람의 이야기는 쓸 것이 더 많아 도저히 이 지상에 다 쓸 수가 없다.
근엄하기 그지없는 신부님의 예절이 끝나자 우리들은 연도를 드리고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이세상에서는 비록 버림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영원한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오른쪽에 설 복된 사람들이 아니겠냐고. 이토록 복된사람이 되도록 애써주신 신부님의 노고를 생각하며 미끄러운 산을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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