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는 바와 같이 매년 1월 마지막 주일은 구라주일이다.
1968년 주교회의에서 나병퇴치를 위해「구라주일」을 선포한지 올해로 8회째를 맞는다.
노르웨이의 한센 박사에 의해 나균이 발견(1873년)된지 1백여년, 나병의 역사는 성서의 기록상으로도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지금 본란은 나병, 그 자체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병이 유전이 아니고 단순히 전염병이라는 점, 그리고 그 병은 난치가 아니고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사실 등-.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이기 때문에 증언부언이 필요하지가 않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전기한 바와 같이 이미 잘 알려진 나병에 대해서 또 나환자들에게 대해 지금까지도 고립시키고 외면하고 있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나라에서 제정한 나병의 날(지금은 보건의 날에 통합됐지만)이라든가, 명절때라든가-, 잠시 떠들썩하고 또 그들에게 얄퍅한 온정을 베풀고는 이내 잊어버리고, 아니 아예 무시해버리고 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라 할 수 있겠다.
같은 지역사회에서 삶을 같이 하면서 단지 하나『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절의 벽을 두텁게쌓고 불신과 괴리의 베일을 드리운후 대화가 두절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무슨말로 변명해야 할까-.
하한선에 머무를수 밖에 없는 국가의 헤택(양곡ㆍ의료 등)만으로 근근히 생존해 나가는 그들에게 목숨만 이어준다 해서「건강하고 양식있는」사회인들이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렸다고 자위해 버린다면 오늘「구라주일」을 맞아 우리는 좀 더 깊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인간이기에 살뜰한 정이 그립고 위안을 필요로 하고 대화를 욕구하는 그들에게도「생활」할 권리가 있는 것이고 또 그 권리를 건강한 민주시민들은 부여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국가가, 정부가 도맡아 처리해 주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지금 우리나라 형편이 그렇지 못한 바에는 그 책임을 우리들 스스로 나누어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하고 싶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후생시설이 완비되고 또 국가예산으로 나환자들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완벽한 치료까지 해줄 수 있다면 모르되 현실 그 자체가 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그 각도를 달리할 필요가 있겠다.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나 환자수는 8만여 명. 그러나 이 집계에 포함되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재가 환자를 계산한다면 정확한 숫자는 아직 알 길이 없다
본란은 여기에서 세 가지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국가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선진국에서는 나날이 줄어가는) 나환자들의 후생ㆍ복지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말고 전국 각 처에 산재해 살고있는 환자들과 그 관리자들에게까지 행정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환자촌을 그 행정구역안에 갖고있는 지방 장관이 어느정도 그들에게 관심을 표명했으며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그들의 생활터전을 한번이라도 살펴보았는가 묻고싶다.
둘째는 나환자들을 인도하고 치료해줄 지도자와 의학도의 출현이다. 사회에의 복귀가 차단된 나환자들을 위해 입이 되고 손이 되는 지도자(봉사자)의 나타남이 당장 아쉽고 또 그들을 치료해줄 의학도의 배출은 사회사업적인 측면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돈벌이가 안된다고 특수피부과 전공은 외면해야 옳을까. 여기에는 당국의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나병 전문의사가 과연 몇 분이나 되는가 다섯손가락을 꼽지못하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있다. 다음은 사회와 모든 사회인에게 부탁하고싶다. 환자들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도 물론 다급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호구지책만으로 일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절을 뚫는, 통로 또한 중요한 것이다. 그들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갈등과 미움과 괴리가 해소되고 인간애와 이해가 연결되는 새로운 풍토가 이제부터는 조성되어야 겠다는 점이다. 누구든 선행을 한다고 자만할 필요가 없다.
이웃돕기, 그것은 깨끗하고 잘사는 사람들끼리의 사치놀음이 결코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난처한 그들에게 시선을 돌려주어야한다. 오늘 하루의 일로만 끝나지 말고 그것은 오랜 시일에 걸쳐 우리 스스로가 헤쳐나가야 할 길인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