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일련의 안건중에서 마침 금년이 79위 복자의 시복 50주년이어서 이를 기념할 행사 및 한국 전교 2백주년(1984)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구성문제도 아울러 거론되었다고 한다. 매우 바람직스럽고 고무적인 소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벌써 1973년 가을 주교회의는 한국전교 2백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구성을 상임위원회에 일임한 적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고저 경향잡지는 일부러 특집을 마련하여 2백주년을 맞는 우리의 자세를 점검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 이 문제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금년 시복 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문제와 함께 다시 거론되기에 이르런 것이다.
회고하건대 지금으로부터 바로 50년전 금년처럼 성년행사가 한창이던 1925년 79위의 시복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교회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표현키 어려웠다.
「로마」에서 존귀한 복자의 칭호를 얻고 개선한 그들의 영광은 곧 우리 겨레와 우리 교회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애써 얻은 것은 아니었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선물한 영광이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눈엔 당연히 복자가 되어야 할 순교자들이 시복의 영광에서 소외되었음을 보아야 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순교 선열들이 그들의 피로써 비싸게 사들인 영광을 누리고 있고 또한 그 영광의 증인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증언으로 그들의 영광을 더했는가, 아니면 무관심에서 도리어 그들의 영광을 손상시키지나 않았는가 한번 반성해볼 문제이다.
우리의 복자들이 복자의 존칭을 받은지도 어언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간 그들이 한국 출신이라고 하여 내내 복자위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성인으로 승진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었다. 하기야 그들이 성인이 될 자격이 없어서였다고 변명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로마」가 할 일이지 우리의 권한은 아니다. 그러므로 시급한 것은 지금이라도 어서 그들의 시성을 청원하고 그 운동을 전개하는 일이다.
그간 이러한 운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고 특히 평신도 측에서 그러한 건의가 여러번 있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평신도 선에서 그쳐버린것 같다. 최근 평신도 활동의 위축은 뜻있는 이들로 하여금 유감과 우려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평신도를 기념사업에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그간 위축된 평신도 운동을 부흥시킬 수 있을 계기도 마련될 수 있을것 같다.
복자들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자가 된다는 관점에서 물론 과거의 훌륭한 복자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제에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고 새로운 순교 개념에 적합한 복자전의 간행도 계획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서울의 서소문밖 보녕의 갈매못같은 남은 순교지의 확보도 가능하다면 병행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1984년으로서 한국전교 2백주년을 맞게 될 한국교회에게 이 뜻깊은 해를 자주선언의 해로 정해줄 것을 감히 건의한다. 2백살이라면 교회로서도 성숙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주선언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복음화 운동외의 더좋은 방법이 있을리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 치밀한 준비와 계획을 세워 성직자와 평신도가 합심해서 조직적이고 종합적인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것이다.
성숙한 교회란 우선 인적 물적 자원에서 자립을 성취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방인교회로 선언된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외국인을 교구장으로 혹은 본당 신부로서 우리의 부족을 채우고 있는 부끄러운 실정이다.
성숙한 교회란 더 나아가서 토착화한 주체적 교회로 지향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복음화 운동은 단순한 서구식의 모방을 지양하고 한국의 사회와 전통에 맞는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이론과 방법으로 전개하여야 할 것이고 이에앞서 한국교회의 포교사의 연구로써 문제의 현실성이 파악되어야할 것이다.
시복 50주년 및 포교 2백주년 기념행사 준비문제가 곧 주교회의에 상정될 것이라고 한다.
이번만은 용두사미가 되지않도록 그리고 외부적인 행사에 그치지않고 내실을 기할수 있는 어떤 획기적인 단안을 바라 마지 않는다. 동시에 그것이 위기에 처한듯한 오늘의 한국교회의 진로를 개척하여 현 난국을 타개하는 전환점이 된다면 이에서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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