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시끄러웠던 갑인년도 한숨에 찬 송년사에 밀려 영원으로 흘러갔다. 사람들은 해가 바뀔때마다 마치 낯선세계로 이민이나 가듯 가슴 설레이며 새로운 앞날의 꿈을 설계하기도 하고 또 다시 삶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은총을 비는 기도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가 유달리 괴로왔던 심정에는 새해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고 절실하리라.
그런데도 매스콤을 통해 전해오는 유명 인사들의 신년사들은 하나같이 밝지 못했다. 세계적 불경기 식량 부족 원자재 고갈 정치적 대립 등등 암담한 예측들로 숨막히는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가정이란 좁은공간속에서 가사에 쫓기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주부의 한 사람인 나에게도 그 불안은 예외없이 스며들고 있다.
폭풍속에 배위에서『주여 살려주십시오 우리가 죽게되었습니다(마테오 8ㆍ25)』하고 부르짖던 예수님의 제자들의 두려움을 실감케 해주는것같다. 그때 예수님은『믿음이 약한 사람들! 왜 그렇게 겁이 많소? (마테오 8ㆍ26)』하시며 꾸짖으셨다. 그 꾸짖음이 바로 지금 나에게 하시는 것만 같기도 하다.
자신안에서도 온 우주안에서도 항상 함께 계시며 끊임없이 기적을 보여 주시는 하느님을 잊고 있었던 우둔함이 부끄럽기도 하다.
올해는 화해의 성년이다. 방향을 잃고 방황하며 온갖 부정과 부조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들을 위해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성베드로」대성전의「황금의 문」을 열어 1975년을 성년으로 온세계에 선포하시고 하느님과의 화해와 인간과의 화해를 통한 그리스도의 참평화를 만 백성이 함께 누리게 되기를 축복하셨다.
또한 UN에서는 올해를「세계 여성의 해」로 선포했다.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품위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는 있을수가 없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남성에 못지않는 존엄이 보장돼야 하고 또 그 기능이 존중돼야 한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만드신 남성과 여성은 하느님의 창조 의도대로 보존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뜻깊은 새해를 맞아 이루어져야 할 소망이 너무나 많다. 지구상에 전쟁이 종식되어야 하고 불경기가 회복되어야 하겠으며 맞붙어 응얼거리는 대립과 긴장이 해소되고 참된 평화를 되찾아야 하겠다. 이러한 방대한 소망들을 풀기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암흑이 짙으면 짙을수록 빛을 갈구하는 욕망은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니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을 보다 밝게 보다 널리 비추도록 모든 지체들이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신심생활만 충실히 하면 된다고 하여 교회 공동체에 무관심한 반그리스도적 이기심은 없는가? 평화와 일치를 해치는 원인을 남에게서만 찾으려드는 오만은 없을까? 하느님이 주신 지위나 권리를 자기의 것이라 뽐내며 횡포를 사명의 수행이라 착각하는 어리석음은 없는가? 고고한 자세로 베푸는 기쁨에 되취하면서 사랑과 봉사를하고 있노라고 착각하는 위선은 없는가? 구원사업을 계승하는 인류 복음화의 지고한 소명의식을 겉으로의 교세확장에만 급급하는 허영으로 흐려트리는 어리석음은 없을까? 온 인류를 생명으로 이끌어야 할 그리스도의 빛을 흐리게하는 모든 먼지들을 깨끗이 닦아내는 노력만이 참평화에의 지름길임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다. 평화란 깨끗하고 착한 마음에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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