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忠孝)사상을 갑자기 재강조했기 때문일까. 이번 추석에는 그 어느 해보다 성묘객이 많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묘지에서 행하는 의식도 실로 다양했다. 음식을 차려놓고 전통적인 조상 숭배의 예를 다하는 가족도 있었고, 온 가족이 둘러서서 찬송가를 부르는가 하면 연도를 함께 바치는 천주교 신자 가족도 있었고, 큰절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효도의 외적 표현 방식은 제각기 다르긴 해도 아무튼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 도시 사람들이 저런 예를 갖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파의 혼잡을 헤치고 교통지옥을 감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땐 끔직스럽기도 했다. 저들은 돌아가면서 귀향시에 겪었던 어려움을 다시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에서처럼 조상의 묘가 성당 구내에 있다면 매 주일 참배할 수 있어 원천적으로 혼잡을 피할 수 있으련만….▲추석 때 몰려드는 귀성객과 산천에 수놓아진 성묘객들을 보면 새삼 효를 재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러나 추석 전에 있었던 노파 피살사건을 보면『충(忠)만 있고 효는 없으니…』하는 탄식이 호소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돈과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를 정도로 각박해져가는 인심. 바로 이 때문에도 효가 새삼 강조되는지 모르겠다. ▲십계명을 들먹거릴 필요도 없이 인간이면 당연히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게 되면 노인에 대한 존경심도 저절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효도는 이처럼 좋은 도덕이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폐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부모에 대한 자녀의 지나친 예속을 의미하는」경우가 그렇다. 자녀가 부모에게 지나치게 예속되면 자녀의 천부적인 자유와 권리가 유린될 뿐 아니라 창의력 발휘는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우리는 조선시대를 통해 충효사상은 봉건사회의 권위주의와 계급의식 조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것은 연장자(年長者)가 연소자에게、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도덕」이었다. 교회에도 이 같은 폐단이 스며들어 10여 년 전만 해도 젊은 신부가 노인 평신자를 보고 낮춤말을 쓰는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그리스도 형님」이라 부르는 시대에 걸맞는 충효사상의 개념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