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무서워하다」는 말과「두려워하다」는 말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의 뜻은 아주 판이한 데가 있다. 국어사전은「두려워하다」를「공경하고 어려워하다」로 풀이하고 있다. 「누구」혹은「무엇」을 두려워할 때는 그「누구」나「무엇」에 대해 존경과 믿음과 사랑이 깔려있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성서에서도「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믿음에는 두려움이 수반되며 두려움과 보충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무서워한다는 말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섭다는 말은 바로 공포와 전율로 통하는 말이다. 「누구」나「무엇」에 대해 공포감을 느낄때 그 속에 존경이나 믿음이 있을 수 없고 사랑은 더욱 있을 수 없다. 수풀 속에서 사나운 호랑이가 으르릉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피신하거나 신변보호 조치를 취하게 된다.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지 공경하고 어려워해야 할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신자들은 주교님을 두려워한다. 주교님에게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교님 역시 신도들을 두려워한다. 신도들에게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같은 두려움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상호 존경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만이 참된 자유와 평화가 깃들 수 있다. 반대로 교회에 이 같은「두려움」이 없다면 모든 질서는 파괴되고 만다. ▲일반사회도 마찬가지다. 존경과 믿음과 사랑에서 출발되는 두려움으로 모든 인간관계가 맺어지고 질서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않고 공포와 전율만이 감도는 사회는 무서운 사회다. 그런 사회에선 오직 무서움에서 일탈하려는 도피와 거짓과 불신이 깊어지고 기상천외의 자구책도 나오게된다. 영국의 처칠경이 갈파했듯이『악어가 입을 벌리면 웃으려는 것인지 잡아먹으려는 것인지 알수 없는』상황이 되는것이다. ▲이 같은 상황때문에 오늘의 사회는「어느때보다도」복음정신을 필요로 하고 또 갈망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된다. 모두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이웃을 두려워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지도자도 피지도자도 하느님과 함께 있음으로써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도자는 피지도자를 두려워하고 피지도자는 지도자를 두려워하게 될 때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