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회정의구현 운동이 활기를 띠어가자 교회내 특히 성직자들간에 정의구현 운동의 방법과 한계를 문제삼아 이견이 적지않게 노출되고 있다. 그래서 본사는 지난 7일 정의구현사제단에 가입한 신부님과 그렇지 않은 신부님을 모시고 좌담회를 가진바 있다. 예상했던 대로 두 분 사이에 현실을 보는 눈과 현실감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운동의 방법과 한계에 대해서도 현격한 견해를 보였다. ▲정의구현 사제단 소속신부님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말하는데 제의를 입고 하든 벗고 하든 별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대편 신부님은 기도회에서 기도만 하고 성명서나 결의문을 발표하려면 토론회나 성토대회를 따로 열어서 해야 한다고 맞섯다. 기도회의 순수성과 품위를 지켜달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사회참여의 한계에 대해 한 분은 교회는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고발하는데만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 분은 구체적인 상황속에서 사회운동을 해야 하므로 정치제도가 원칙적으로 불법성과 비인간성을 내포하고 있으면 그것부터 고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두 분 신부님은「교회가 사회참여를 해야 한다」는 원칙과「견해차이는 있더라도 교회내에 분열은 있을 수 없다」는 데는 완전히 일치했다. ▲좌담중에 무엇보다 충격적인 얘기는 기도회에 참여하는 사람도 떳떳해야하고 안하는 사람도 떳떳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그렇지 않은게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참여하면 정치에 이용당한다는 오해를 받고, 안하면 여당권으로 몰리거나 뭘 얻어먹었다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기도회에 참여하는 분들과 안하는 분들 사이에 뭔가 경직돼가는 분위기가 없지않다는 얘기가 된다. 상호간에 교통할수 있는 기회가 없었음을 웅변해 주는 것이다. ▲교회안에서나 밖에서나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화의 상실에 있는것 같다.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도 그 자리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현상마저 있다. 서로 자기가 옳다는 주장만 내세우면서 상대방의 얘기는 들을려고 하지 않는듯한 인상을 주는것이다. 이렇게 대화가 없으니 감정의 수풀만 무성해지고 인간관계가 경화될 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모」비슷한 현상까지 겹치게 되니 혼란이 더해지는듯 하다. 어쩌면 이같은 혼란이 더욱 위대한 진보의 조짐일지 모르지만「대화의 표식」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보고싶어하는 이가 반사경 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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