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는 어떤 단어의 어의가 갑작스레 변질되거나 뒤바뀌는 바람에 놀라기도 하고 묘한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동네 꼬마들이 궤변 비슷한 생떼를 쓰는 아이를 보면『얘, 너도 유신하니』하고 꼬집는걸 보는 수가 있다. 어른들 사회에서는 유신체제와 독제체제를 혼용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이같은 현상은 유신의 본뜻에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절감케 한다. ▲이같은 혼란은 긴급조치 위반자들이 석방되는 교도소 앞에서 더욱 심해진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죄인이고 교도소는 죄인을 교도시켜「개전의 정」이 생기게 하는 곳으로 아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옥문앞에서 석방되는 이른바 민주인사를 맞이하는 환영인파 속에선「정의의 투사」니「자유와 민주의 기수」니 하는 찬사가 터져나온다. 민주인사를 시대가 낳은「영웅」대접을 거침없이 또 당당하게 하고 있다. ▲석방되는「죄수」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이 추호도 없을뿐만 아니라 갇히지 않았던 사람들 보다도 더욱 의인임을 자부하는듯 하다. 그러니 개전의 정이 있을턱이 없다. 환영나온 사람들은 오히려 구속됐던 민주인사들의 처지를 부러워하면서 감옥에 함께 들어가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는 눈치까지 보인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감옥이란 곳과 바깥세상이 이정도 가까와졌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른바 민주인사 속에는 현직 국회의원이 한사람도 끼어있지 않는게 이채롭다. 환영인파 속에도 그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특히 지학순 주교가 석방되던 17일 저녁에도 개신교 신자인 정일형 의원 한사람만이 눈에 띄었다. 「정의의 투사」도「자유와 민주의 기사」도 되지못한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죄인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신분 때문이었을까. ▲역시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선량」이란 어의도 무참할만큼 거꾸로 해석되고 있음이 역력해지고 있다. 이렇게보면「선량」이란 말 자체가 없어진 느낌이 들 정도로 사용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선량이라 부르거나 불리우기가 민망스럽기 때문일까? 이렇게 어떤 단어의 뜻이 그 본래의 어의를 상실하고 그 이미지가 엄청나게 바뀌어져가니 모든것을 정반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간 어의회복 운동이 전개될 날이 올것도 같다. 참으로 묘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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