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6세는 지난 11일 전세계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화해의 성년을 맞이한 이번 사순절에 모든 크리스찬은 특히 가난한 이를 돕고 보다 의롭고 밝은 세계건설을 위해 노력할 것을 호소했다. 본란은 지난호에 이미 금년 사순절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바 있지만 특히 이번의 교황 사순절 메시지가 갖는 의의가 심중함을 느낀 나머지 다시한번 금번의 사순절을 뜻있게 지내는 자세에 대해 보고해 보자고 한다.
교황 메시지는 먼저 이번의 사순절에 화해의 성년을 맞이하는데 크게 관련시켰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75년의 성년은 화해와 쇄신을 양대목표로 삼고 이미 2년동안 준비를 거쳐 금년으로 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이 하나의 큰 특징이다. 화해와 쇄신은 사실, 같은 내실의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서 화해하면 쇄신이 되고 또 쇄신하면 화해도 되는 것으로 이 두가지 다 회개(회심)라는 근원적 행동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의 인류사회를 돌아볼 때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극단화에 따라 하느님의 구세 의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의 이 시대야말로 저 요르단 강변의 세례자 요한과 성자 예수의『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외치심과는 달리, 마치『회개하라, 천국은 멀어가고 있다』는 새로운 성령의 경고가 일어날것 같다.
이때에 교회는 화해의 성년을 선포하고 회개를 통한 일대 쇄신을 교회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은 실은 성령의 움직임과 시대의 징표(싸인)를 잘 식별한 적시적 응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교황 메시지는 크게 두가지 항목으로 요약된다. 즉 하나는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이고 둘째는 의로운 사회건설에 참여하는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모든 크리스찬에게『가난한 사람과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이 남는 것을 나누어 주기 보다는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주라』고 촉구하고 또 이어서『예수는 자신을 가난한 또 이어서『예수는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했으며 마지막날까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을 약속했으므로 또 그들은 모든 크리스찬은 …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늘날의 물신주의는 경제적 발전은 가져왔으나 극단의 이기주의의 결과로서 부익부 빈익빈의 극대화를 이룩했고 전세계를 통해서 1초동안에 25명의 사람이 굶어 죽어간다는 비참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교황의 말씀은 참으로 뼈저린 실감을 갖게한다.
어제까지도 언필칭 교회는 가난해야 하고 또 가난한 이를 도와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제도적 교회가 가난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요해지기를 기도해왔지 않았던가?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가난한 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옹호해왔던가? 이때에 모두의 맹성이 요구된다.
사순절의 봉재(封齋)를 아니지킨바 아니지만 이사야서의 재지킴의 본뜻을 새삼 깊이 묵상해야겠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재(齋)는 고행을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잿(灰)더미위에 눕거나 하는것이 아니고 부당하게 속박된 자를 풀어주거나 억압당한 자를 해방시켜주거나 굶주린 자에게 빵을 주거나 집없는 자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거나 헐벗은 자에게 입을것을 주거나 하는 등의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재삼 명심해야겠다. (이사야 58장 5~7참조)
바오로 6세 교황은 또 메시지에서『보다 의롭고 밝은 세계건설을 위해 노력할것』을 호소하면서 이와같은『사회참여가 부활절을 준비하기 위한 40일간의 사순절을 기념하는데 적절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부언했다.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인간의 존엄서을 보전하는 등의 사회참여와 사순절의 바로지내기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전호 본란에서 언급한 바로서 교황 메시지의 강조점과 완전히 그 취지를 같이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중복됨을 피하고자 한다.
다만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행하고있 는 전술한 바와 같은 사회참여는 바로 교황 메시지의 정신에도 전적으로 부함됨이 입증되었음을 지적할뿐이다.
끝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 본지 2월 16일자 950호에 게재된 사계 지도층의 대담은 이 시기에 매우 알맞고 교회의 사회참여에 관한 약간의 견해차이에 대한 상호이해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고 보여진다. 즉 교회의 사회참여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고, 다만 그 한계성과 방법론에 있어야 약간의 견해를 달리하는 것을 엿볼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 그러한다 양성(획일이 아닌)안에서의 일치가 바로 교회의 바람직한 상임을 감안할때 조금도 우려할 바가 못되고 오히려 더욱 폭넓은 대화의 길을 통해서 진정한 화해와 쇄신이 이루어지는 성년의 부활절을 맞이할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