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에 발표된 박대통령 긴급담화에 의한 긴급조치 제1호(개헌논의금지)와 제4호(민청학련 관련 및 학원 데모 금지) 위반자들의 석방결정으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는 구속된지 226일만인 지난 17일 밤에 출옥하였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물론 전세계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함께 마음 아파 하였기에 그 출옥을 또한 함께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출옥이 무죄판결이나 사면이 아닌 구속집행 정지 결정에 의한 것이기에 아직도 무거운 마음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지 주교가 군법회의에 구속 기소되었던 피의사실은「민청학련의 국가변란기도 사건에 관련된 내란선동」이라는 정치범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본인의「양심선언」을 읽기전부터 지 주교가 정치인이나 정치 선동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무언가 크게 잘못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교회가 그 신앙을 통해서 믿고 행동하는 것은 이 지상을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르도록 성화하려는 것이고, 그 복음화를 통하여 지상의 모든 인류를 죄악에서 하느님의 나라로 구원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지 주교는 이 운동을 정치운동이 아닌「진리운동」이라고 하였다.
국가는 그 나라의 백성이 지상에서 선과 정의와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와 국가는 각자가 제 길을 따르는 한 서로 반목되거나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협동관계에 놓인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이번에 지 주교 사건같은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것은 필연 서로가 상대방의 사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어느 한편이 제 사명을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 논리적인 귀결이다. 따라서 차제에 정부는 정부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자기사명과 그 실현을 위한 방법의 선택에 대한 재삼의 반성이 있어야 하겠고 만약 서로의 사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있다면 성실한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가 앞서야 할것이다.
복음의 교회가 그 나라의 패윤과 부정의와 부패를 경고하고 그 방지에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사명의 하나이다. 이와같은 교회의 사회에 대한 소극적 사명과 복음화를 위한 적극적 사명의 수행을 가리켜「교회의 사회참여」라고 한다. 그 대상이 정치계에 있으면 정치참여가 될 것이고, 경제계에 있으면 경제참여가 될 것이고 문화계에 있으면 문화참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교회는 정치나 경제에 간섭하지 못한다」는 명제가 나올 수 없다.
교회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복음화의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참여는 정치인의 정치참여와 그 차원이 다르고 그성질이 다르다. 따라서 그 방법도 달라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흔히하는 감정적 대립이나 수의 형포나 정적의 승악나 정권욕 등이 있을 수 없다. 학대를 받으면서도 사랑하고 봉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위해 선과 정의의 질서를 세워야 하고, 모든 국민이 함께 경제적 부를 누릴수 있게 하여야 하고, 악과 침략으로부터 그 국민의 평화와 국토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집권층이 바라는 어떠한 이름의 자기이익이나 명예보다 크고 소중한 국가의 제1의적 사명인 것이다. 이런 사명을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는 정치인이나 행정인만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의 적극적 사명인 선과 정의와 평화와 복지의 증진은 그 성패가 종교와 교육과 그 외의 사회지도층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참여에 매여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가장 인간 파괴적인 북한의 공산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동시에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국민의 안전과 경제의 개발을 이룩해야하는 정부의 무거운 고충을 이해하는데 진지해야 할 것이고, 정부는 교회의 사명을 깊이 이해하여 그 경고나 비판을 성실히 받아들이는데 노력해야 할것이다. 특히 교회의 경고나 비판을 다른 정치단체나 언론기관의 비판과 동질시하여서는 아니된다. 가톨릭교회가 목적하는 피안이 이 현세에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따라서 지상이 천국으로 복음화되기까지 교회의 기도와 현세에 대한 경고와 비판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는 상대적인 만족이 있어도 교회가 목적하는 인간완성이나 지상의 복음화에는 상대적 만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지선을 위한 것이다. 그 길이 험난하지마는 자기 도취나 상대적 만족에서 멈추는 사람이나 국가는 지선에 도달할 가망이 없을뿐 아니라 지상생활의 복지증진에도 낙오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는 인간을 파멸로 몰고간다. 그 좋은 예가 공산주의 국가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해하지 못할뿐 아니라 크게 곡해한다. 그리스도가 산상에서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가르치신 산상수훈(진복팔단 마테오복음 5장1절~9절)은 고통중에 사는 현세인들에게 가장 큰희망과 위로와 기쁨을 주는 말씀이다『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이 말씀을「부르좌지」가「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를 방지하기 위한 기만이라고 한다. 그들의 눈에는 교회도 하나의 위장된「부르좌지」의 정치단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를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지 주교 구속중에 정의구현을 위한 기도회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같은 생명과 목적을 가진 그리스도의 지체이기에 그사이에 분열이 있을 수 없다. 그 방법에 관한 이견은 서로의 토론을 통하여 보다좋은 방법을 찾아낼수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더욱 많은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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