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고있는지 쉽게 알수있다. 그러나 소금이 되려면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이다. 즉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 산에서부터 계곡과 내를 거쳐 주야로 흘러서 바다에 가야되는데 그 여정의 파란곡절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만일 도중에 힘이 든다고 웅덩이에 머물러 바다에 가야한다는 집념을 포기하고 편한 것만 생각한다면 장구벌레의 놀이터는 될 수 있어도 소금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물이 산봉우리에서부터 흐르는 것은 소금의 구약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흐르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을 위해 농업과 공업용수 식수에서 세탁에 이르기까지 봉사를 하면서 흘러 바다의 품에 안기면 짠맛의 젖을 먹고 성장하여 비로소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마치 예수님이 말구유에 태어났듯이, 높은곳에서 흘러서 맨 밑바닥에 내려올때 소금으로 탄생되는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속사업이 끝난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각 가정을 방문하여 자기 몸을 녹여서 사람과 동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소금이 되려면 낮은자리로 내려와야 되는데 교만의 산봉우리에 머물러있고, 수분이 증발해야 되는데 비하여 황금과 물질에 젖어 맹물이니 말이다. 소금이 되었다 해도 녹아야 짠맛을 낼수있다는데 소금가마로 창고에 쌓여 있을뿐이니 각 가정에 장독에는 언제 들어가겠는가? 예수님이 구유에 탄생하여 십자가에 희생된 것이나 소금이 밑바닥에 내려와 응결되어 자기의 몸을 녹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므로 소금이 되려면 고자세가 아니라 겸손해야 되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돈과 물질이 증발돼야 소금이 되는 것이며 녹아서 제 모습을 잃어야 짠맛이 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썩는 것을 막기위해 어름이 되라고 하지않고 소금이 되라고 했으니 그러기 위해서는 물방울이 강을 이루어 바다로 갈 수 있듯이 우리도 마음을 합하여 강을 이룰때 어떠한 장애물도 막을수 있을 것이며 바다에 이를 것이 아닌가? 그래야 유충의 낙원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염병으로 사람을 죽이는 모기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독자논단은 애독자 여러분의 차지입니다. 교회내의 건설적인 제안이나 비판이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2백자 원고지 5~10매 정도. 채택된 분에게는 소정의 고료를 우송해 드립니다. 많은 투고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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