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제마다의 수명을 지니고 있다. 요즘에 와서 인간의 수명은 많이 길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백년을 넘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세대교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인 것 같다. 그런 유행어가 생기게 된 것은 젊은세대가 기성세대의 잘못과 침체를 규탄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그와 같은 세대간의 긴장과 대립은 비단 우리나라와 같은 전통사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젊은세대는 전통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서「기성불신」을 마치 혁명가의 제목처럼 부르게 되었다. 새세대의 윤리와 법률과 문예와 생활양식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학자들 가운데는 한 세대를 15년으로 잡는 자가많다. 15년이 지나면 한 세대가 바뀐다는 계산이다. 그 논거에 타당성이 있고 없고는 차치하고 그 견해에 따른다면 대체로 한 평생에 너댓번은 세대교체를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15년이 지나면 그 가정과 그 국가와 이 세상에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그러나 이같이 어리석은 계수놀음도 흔치 않을것이다. 이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의 창조가 15년만에 한번씩 한꺼번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에는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계에 세대교체가 있고 모든사회에 신진대사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현상은 어느시기에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숨소리와 함께 간단없이 이루어지고 있는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가장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쇄신은 그 간단없는 사회의 신진대사와 함께 소리없이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그런데 세대교체니 기성불신이니하는 구호를 외치게 되었다면 불행히도 그 사회에 비정상적인 침체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사회의 발전은 세대간의 반목이나 대결이 아닌 기성세대의 반성과 젊은세대의 이해로 서로 협력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는데 유의해야 할것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새 학사와 새 일꾼들이 학교에서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이 사회의 신진대사가 눈에 띄게 일어나는 계절이다. 대학에서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던 젊은이들의 새물결이 이 사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해방후 오늘까지 30년 동안 해마다 이같은 신진대사가 되풀이 되어왔다. 부정부패를 규탄하던 젊은이들이 수없이 흘러들어왔고 그 규탄을 받던 기성들은 말없이 타계로 흘러나갔다. 그런데도 이 사회의 부정과 부패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고있다.
사회의 쇄신은 생물학적인 신진대사나 부정부패 일소의 구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힘의 과시나 일시적 혁신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방향의식을 가지고 내적쇄신을 일으키지 않는 한 그 사회는 쇄신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과 같이 기계의 생산력이 노동력을 능가하고 조직의 힘이 개개인의 힘을 제압하는 사회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 기계와 조직은 정의와 선을 생산하는데 능률적인것 만큼 부정과 악을 생산하는데도 능률적이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가장 말썽이 일고있는 것이 인권의 회복이고 정의의 구현이고 민주의 회복이고 고문의 규탄이다. 공산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안전과 국토의 보존을 위해 다소간에 인권이 억압받지 않을수 없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치고 그 방법이 나쁘다는 것이고 그 목적이 다른데 있다는 의혹을 사게 한다는 것이다. 집권도에 부정이 많고, 부의 보호가 고르지 못하고, 권리의 행사가 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국민생활속에도 부정과 부패가 날로 심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정의를 구현시켜야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백성의 바른소리를 귀담아 듣지않고, 힘의 정치를 농사로 하니 명실공히 주권재민의 민주정치를 회복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요즘 석방된 긴급조치 위반자들이 고문당한 사실을 폭로하자 국민들은 하나같이 놀란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판과 규탄은 비단 젊은세대나 대학생들 속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재야 정치인은 물론 종교인 언론인 학자 그 외의 사회인사들 사이에까지 만연돼 가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국민의 수권자인 정부는 이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하고 납득될 수 있는 해명이 있어야 하고 그 실천이 따라야 할것이다. 어느편에 잘못이 있든 그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민주주의의 정치윤리이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윤리적인 방향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특히 국가는 모든 국민에 대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국민 각자 또는 국민과 권력구조간의 정의로운 질서와 국민 전체를 위한 공동선을 보장하고 증진시켜야 하는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은 궁극적으로는 서로 보완되는 관계에 있으면서도 때때로 마찰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일수록 그 공동선은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정의는 모든 사회질서의 기반이다. 즉 사회가 존립하고 유지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그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질서의 유지와 함께 공동선의 증진이 있어야 한다. 그 공동선은 사랑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랑이 없는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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