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참 글자 그대로 하늘을 받들고 사는 동네다. 이 봉천동이 나와는 너무도 사연이 많다. 40 평생을 배회하다 주님의 품에 안긴 곳도 이 봉천동이며 죽음의 길목에서 사경을 헤매는 나에게 주의 손길이 뻗친 곳도 이 봉천동이다. 1974년 12월 24일 평생 잊을 수 없는 첫 영성체 날! 그 이듬해 봄에는 주님을 안 지 불과 서너 달밖에 안 되는데 나는 당돌하게도 하느님께 청원을 했었다.
어떤 일을 놓고 난관에 봉착하였던 거다.『주님 이 일을 해결시켜 주시면 당신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 하겠습니다』청원을 해놓고 며칠을 쫓아다니다 그 일이 무사히 해결된 것을 보고 나는 너무도 기뻤다. 이내 꽃가게에 가서 조그마한 사철나무 한 그루를 사다 사람을 시켜 성전에 바쳤다. 아무도 모르는 하느님과 나만이 아는 나무였었다. 그 나무는 식목일에 누구의 손으론지 성전 화단 한가운데 심어져 있었고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나무를 바라보며 내 신앙도 그 나무와 같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성당 증축이 있은 후 그 나무가 볼품(?)이 없었던지 유치원 마당 한쪽 구석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 문은 굳게 잠가 놔서 밖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어쩌다 그 문이 열리면 나는 들어가서 그 나무와 흐뭇한 정을 나누기도 했었다.『저 나무가 담 이쪽까지 뻗어 바깥에서도 볼 수 있을 때는 내 신앙도 저만큼이나 뻗어 비로소 나는 하느님께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지. 나는 열심히 그 나무와 내 신앙을 겨루고 있었다.
빨간 불이 타오르는 성전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님과의 대화에 여념이 없었고 서러움이 어깨를 짓누를 때 나는 곧잘 이 성전 문을 혼자 서성거렸다.
때로는 성당 문이 아직 열리지 않는 이른 새벽에 때로는 신자들이 다 돌아간 밤에 수녀님이 문을 걸려고 서 있는 것도 모르고 도취되어 성체 앞에 엎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내 장례미사가 있을 뻔했던 이 봉천동 천당! 크고 작은 수많은 은혜를 남 몰래 듬뿍 받았던 이 봉천동! 이제 내일이면 여기를 떠난다. 지난 3ㆍ4년 동안에 일어났던 이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 위를 스친다. 숙명적인 운명 아래 체념을 미덕으로 알고 고독을 혼자 씹어 삼키며 긴 세월 동안 회의 속에서 삶을 영위해온 한 여인에게 그 엄청난 진리로써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곳도 이 봉천동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며 또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당 문을 나서는 나의 발길은 못내 아쉬움에 젖었고 뭉클한 내 가슴을 어느덧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었다. 축복 받은 봉천 교우들이여, 길이길이 주님 궁에서 살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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